“자유당 시절에는 경찰의 ‘끗발’이 셌어요. 출산이 임박한 경찰서장 애인이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속도를 내지 않자 ‘이 배 안에 ○○경찰서장 애가 있다’고 했대요. 그러자 기사가 부리나케 속도를 냈다는 일화가 있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전횡을 일삼던 경찰은 상대적으로 힘을 잃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정치군인이 득세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초급장교까지 스폰서가 붙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죠. 그러나 민주화되면서 군의 끗발이 약해지고 검찰이 힘을 얻었습니다. 특히 김영삼 정부 때 검찰이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속시키면서 ‘검사 전성시대’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검사가 연루된 각종 법조비리 사건과 ‘정치적 수사 논란’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검사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나마 요즘까지 끗발을 유지해온 직업이 판사입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판사의 ‘튀는 판결’이나 ‘막말 파문’ 등을 지켜보면 판사도 더는 사회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아요.”
최근 만난 검찰 고위 간부가 과거에 비해 검사의 위상이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얘기다. 잦은 ‘영장 기각’과 ‘튀는 판결’에 대한 불만도 섞여 있었지만 위상 추락을 미리 경험한 ‘선배’가 하는 고언(苦言)처럼 들렸다.
요즘 사법부는 과거보다 권위가 떨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근 일부 판사의 정치적 발언과 막말 파문이 이어지면서 법정에서 60대 소송 당사자가 재판장을 향해 “판사들도 대통령에게 ‘가카새끼’니 ‘빅엿’이니 하며 막말하는데…”라며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법정소란 사태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재계나 정치권 등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판사에게 재판을 받으면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판사도 사회 구성원인 만큼 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싶은 욕구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분 보장과 함께 막강한 권한을 준 것은 본분인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다. 일부 ‘튀는’ 판사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불편부당(不偏不黨)을 강조하는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된 것은 단순히 법관들만의 차원을 넘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의 홍수 속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대다수 판사가 논란을 일으킨 일부 판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판사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연구 건의와 관련해 “연구는 얼마든지 해야 하고, 또 그런 장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고 법관이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재판 업무를 제쳐두고 순수하게 사회적 현안을 연구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 것도 뼈 있는 말로 들린다.
최근 들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판사들을 보면 한때 끗발을 날리다가 ‘오버’ 하는 바람에 조직 전체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린 ‘정치경찰’과 ‘정치군인’ ‘정치검찰’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지만 해당 조직과 후배들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 한때 ‘끗발 있던 공직자’들이 간 길을 판사들은 걷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