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자기책임은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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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기원전 50년대 로마 호민관 클로디우스는 빈민층에 싼값으로 밀을 나눠주던 제도를 무상배급으로 바꾸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였다.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고 재정 압박도 커졌다. 서구 역사상 최초의 급진 복지정책은 10년도 못 가고 폐기됐다.

사회 탓, 나라 탓, 모두 네 탓

한국 사회에 클로디우스의 실패한 실험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으로 물꼬를 튼 ‘공짜의 유혹’은 의료 교육 등으로 확산됐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자면서도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40∼50%가 소득세를 전혀 안 내는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이 조세 정의(正義)라는 강변도 들린다. 예금보호한도를 무시하고 부실 저축은행 예금자에게 나랏돈으로 모두 보상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모든 것을 남의 탓, 사회 탓, 나라 탓으로 돌리는 ’자기책임의 실종’이 이런 발상의 저류에 깔려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자란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의 불만이 더 큰 것은 아이러니다. 절대 다수가 가난하고 힘들게 삶의 초반전을 보냈지만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산업화 세대의 목소리는 뒷전에 밀려나기 일쑤다.

대학을 나와도 기대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때로는 정밀한 사실 검증과 국내외 비교도 안 거친 주장이 객관적 진실인 양 전파된다. 본업을 내팽개친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은 시시비비(是是非非)에는 관심 없고 추파를 던지거나 선동하느라 바쁘다. 고민을 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모두 남들 탓이야”라는 단순논리가 도를 넘을 때도 많다.

세상을 경쟁력이나 효율의 잣대만으로 재단하기 어려워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모를 잃은 청소년, 치매와 빈곤층 노인, 신체 및 발달 장애인 같은 약자를 감싸 안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필수 의무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나 직장을 찾는 취업희망자, 저소득 가정도 보듬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동원한 무차별적 퍼주기 급증은 별개의 문제다. 복지 천국이라던 유럽이 지금 겪는 후유증을 보면서도 현실적, 합리적 해법을 외면하면 국민도, 국가도 불행해진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는 여러분으로부터 무엇이든 없앨 수 있는 강력한 정부가 된다”며 거대 정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도 주요 지지기반인 흑인사회를 향해 ”투덜대거나 징징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떼를 쓰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며 일침을 놓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와 소신은 우리 지도자들도 벤치마킹할 만하다.

自助의 원칙은 여전히 중요하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 11월 ‘한국경제, 정상에 다다른 지금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영웅적 경제성장은 외부인들에게 성공의 본보기이며 가난한 국가들이 발전모델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썼다. 지난 반세기의 경제기적을 가능케 한 여러 요인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는 ‘자조(自助)의 원칙’에 표를 던지겠다. 수출확대와 새마을운동 성공에서 보듯 자기책임을 중시한 원칙은 인센티브 부여와 결합해 한국인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자조의 가치는 중요하다.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저서 ‘아시아의 드라마’에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한 나라의 빈곤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역설했다. 지속적 발전을 위한 핵심가치는 자유와 자기책임이다. 평등이나 국가개입을 접목하더라도 보완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본말이 뒤바뀌면 곤란하다.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경구(警句)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젊은이들이 안락함에서 벗어나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그리고 먼 훗날의 이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를 갖추게 해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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