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안철수 공부하고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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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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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대학생들이 돌아섰다. 여당 후보에 비해 2배나 많은 표를 몰아줬는데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젊은층의 비판이 뜨겁다.

우리나라 얘기 같지만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미국 얘기다. 3년 전 ‘정치적 메시아’로 떠올랐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실업난에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자들 편만 든 정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곤 어느 나라를 봐도 지도자는 무능하고, 정치인들은 제 잇속만 차리느라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미국의 정치홍보기업인 에델만 부회장 토니 블랭클리는 “재선이 당연시됐던 서구사회에 글로벌 위기 이후 반(反)정부 반정치인 반기득권 열병이 불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영국 네덜란드에 이어 올 초 아일랜드에서 정권이 갈렸다. 어제 스페인 총선에서도 우파야당인 국민당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통령감으로 떠오른 것도 이변이랄 수 없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과학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기성 정치인에게 신물이 난 탓에 새 리더의 ‘정치 경험 없음’은 되레 순결한 장점이 됐다.

반칙과 편법, MB의 내곡동 사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선 최근 선거 없이 비(非)정치인 출신의 경제 테크노크라트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앉히는 시장(市場)의 반란이 일어났다. 부패한 여권이 개혁에 미적대느라 시장의 신뢰를 잃었는데 야권 역시 지리멸렬한 탓이다. 민주당 대통령 지지도가 1970년대 이래 최하인 미국에선 공화당에도 신통한 대통령감이 안 보이자 ‘미국인이 선택한다’란 단체가 제3 후보 찾기에 나섰다. 만일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나온다면 미국판 안철수 돌풍이 불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선 안철수 아니라 배우 안성기나 소설보다 트위터로 뜬 이외수가 출마 선언을 해도 열광적 반응을 얻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안철수가 희망으로 떠오른 데는 이명박(MB) 대통령의 책임이 없지 않다. 이탈리아의 새 총리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해독제’라는 평이 나오듯이 안철수는 MB와 정반대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업적은 좋은데 국내 평가가 안 좋다’는 평을 들은 MB로선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요즘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으로 살아온 기득권 세력처럼 인식되고 있다. 내곡동 사저(私邸)가 그 물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절감이라는 실용주의에서든, 증여세나 실정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든, 아들의 이름으로 땅을 사는 것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BBK 의혹사건에도, 숱한 위장전입에도 “일만 잘하면 됐지 도덕성이 대수냐” 하며 MB를 뽑았던 사람들은 그 변하지 않는 구태에 절망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감정은 예민해진다. 정치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정서를 읽고, 그 정서에 대고 말을 하며, 정책 아닌 비전을 또렷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성패에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되는 MB의 화법은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 반면 “힘드시죠?” 하고 공감하듯 말하는 안철수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 같다. 반칙과 특권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바른생활 교과서처럼 보여준 그가 제 발로 정치무대에 오를 듯하다 사라졌으니 국민은 더 감질이 나는 것이다.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도 아직은 침묵하고 있지만 안철수는 결국 정치를 할 것이라는 데 나는 베팅하겠다. “원하든 원치 않든 파워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스파이더맨’의 대사를 되뇌는 그가 사회적 책임을 모르는 척할 리 없다. 늦어도 내년 첫 학기까지 원장 역할을 마쳐 서울대에 대한 도리를 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從北세력 불쏘시개 되지 말아야

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해 보다 폭넓게, 치열하게 공부하기를 권한다. ‘경제는 진보, 안보엔 보수’라면서도 안철수는 북핵문제는 물론이고 북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준 행위가 그와 함께하는 종북(從北)세력까지 다 알고도 한 일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극단적 비극을 그린 영화 ‘도가니’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보는 시각도 광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젊은 날 ‘운동권 386’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착한 소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무지(無知)는 자발적 불행이라고 했다. 진보를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든다는 좋은 가치로 믿는 건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모처럼 등장한 정치재목 안철수가 또 한 번 진보를 참칭하는 세력의 불쏘시개 노릇을 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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