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중국 쿤밍 화장실 옆 한국홍보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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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여행사 광고에 ‘봄의 도시 곤명(昆明)’으로 홍보되는 중국 쿤밍에서 지난달 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관광박람회가 열렸다. 우리로 치면 정부 관광부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1998년부터 상하이와 쿤밍에서 매년 번갈아 여는 중국국제여유교역회(CITM)다. 외국인이 찾는 관광국으로 세계 3위, 해외관광지출 역시 세계 3위로 떠오른 대국의 행사답게 중국의 도시와 성(省)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민주화 혁명 후폭풍 와중의 이집트까지 90여 개 나라를 한자리에 모았다.

관계자들은 장관 모시기만 바빠


거대하고 화려한 행사장에서 한국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한국관은 스페인이나 태국관보다 컸지만 3호관 구석 여자화장실 옆에 자리 잡은 데다 개막식이 열린 10월 27일 오전까지도 전시물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무허가 판자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황당한 풍경이어서 짐 푸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도 묻고 싶다. 그런데 답해 줄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행사를 책임진 한국관광공사 측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방문했다는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접대하는지 현장에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한국관은 더 혼돈스러웠다. 무대에선 경기도의 한 피부관리업체가 피부측정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데 바로 옆 대형 그림판엔 ‘제50회 진해군항제’가 생뚱맞게 걸려 있다. 한 장짜리 팸플릿에 ‘이순신 해군제독의 동상이 1952년 제막됐고 1963년부터 벚꽃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내용이 영어와 중국어로 실렸지만 이순신이 누군지는 설명이 없다. 바로 앞, 의자 빛깔까지 빨간색으로 통일하고 민속의상 차림으로 안내하는 ‘원더풀 인도네시아’관과 비교하면 창피할 정도였다.

함께 한국관을 찾은 의료관광협회 김혜영 대외협력이사가 한숨을 쉬었다. “왜 한국에 가봐야 하는지 통일된 메시지가 없다. 중국 부자들은 한국 미용성형에 관심이 많은데, 송혜교 이영애 같은 한류스타 사진을 걸고 관람객을 대상으로 성형 전후 시뮬레이션도 해줬다면 인기 폭발이었을 거다. 소중한 홍보 기회를 이렇게 놓쳐버리다니 너무 안타깝다.”

국민 세금으로 행사에 참가한 정부당국 사람들은 이런 문제조차 모르는 듯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실은 한중 관광장관회담 준비를 하느라 시간도 예산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열두 가지 코스의 중국요리가 나오는 고급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예산타령을 한 문화부는 그날 “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공정(公正)관광을 통한 여행품질 향상방안 공조체제가 구축돼 중국 관광객 유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관광 빼놓곤 ‘청년일자리’ 공염불

쿤밍 관광박람회장에서 한국 관광의 민얼굴을 본 뒤 나는 대통령부터 장차관들이 숱하게 대책회의를 하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한다는데도 왜 좋은 소리를 못 듣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비단 같은 정책을 내놓고 그럴듯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해도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 당국자들이 감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서민경제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자동응답기처럼 ‘내수 진작과 서비스산업 활성화’ 정책을 내놓곤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소비를 많이 하도록 서비스업을 키우면 서민층에까지 온기가 돌 수 있다. 특히 외국사람들을 국내에 불러들여 먹고 자고 쓰고 즐기고 병 고치고 얼굴까지 예쁘게 해주는 관광 의료서비스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철강업의 4배나 되는 울트라 성장산업으로 꼽힌다. 풍문여고 옆에 7성급 전통호텔을 허용하는 건 대기업 특혜가 아니라 다양한 일자리 창출 조치로 봐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자리, 특히 청년층 고용 창출 효과가 큰 관광은 경제위기 해소와 빈곤 퇴치에 가장 공헌하는 산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관료들의 서비스마인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비스산업 중요하다고 예산부터 늘렸다간 장관부터 공기업 실무자까지 세금만 펑펑 쓸까 겁난다. 의료관광객 유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선 영리병원 허용 같은 규제완화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관광박람회에 한 번 참가해도 완벽하게 준비해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기본’이 중요하다.

쓰촨 성 관광위원회 리티안 마케팅과장은 “관광산업 개발은 낙후지역 경제를 키우고 가장 빠르고 고르게 혜택을 나누어 주는 길”이라며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는 관광업체부터 키우면 나머지 부문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중국을 찾는 관광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가 한국인데 한국홍보관 위치가 너무 외진 것 아니냐”며 중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문화부 공무원도, 관광공사 임직원도 아닌 민간인 남상만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이었다. 그리고 여유국 부국장에게 “다음부터 한국을 최우선으로 배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중국 쿤밍에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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