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야생마는 길들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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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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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그동안 안 해본 일을 하고 있단다. 휴식이라나. 무정한 사람 같으니. 요 몇 년 잠잠하던 가슴앓이가 재발했다. 영감이 일본으로 떠난 날 시작된 병이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증상을 겪는 모양이다. 상대 팀 선수가 홈런을 날리면 박수를 치질 않나. 그라운드에 난입해 불을 지르질 않나. 인터넷은 그를 추억하는 글로 넘쳐난다.

프로야구 SK 김성근 감독. 아니 전 감독. 예전엔 1년에 백 번 가까이 만났지만 요즘은 한 번 보기조차 힘들다. 광화문에 들어앉으면 그렇게 된다. 그래도 따로 산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의 하루는 항상 레이더망에 걸렸다. 그에게 야구 외의 삶은 없으니 말이다.

그는 참 까칠한 사람이었다. 왔느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20년 전엔 그랬다. 뭘 물어봐도 대답은 시원찮았다. 그런 걸 왜 묻느냐는 투였다. 안 되겠다 싶어 방문경기가 끝난 뒤 감독 숙소로 무작정 쳐들어갔다. 문전박대를 예상했지만 이게 웬일. 그와 하얗게 밤을 새웠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왼손으로 한글과 히라가나를 번갈아 써가며 어눌한 말투지만 열불을 내며 설명하던 그 지난한 눈빛만 아른거릴 뿐. 방을 나서며 물었다. “못 주무셔서 오늘 경기는 어떡합니까.” “난 괜찮아. 아직 잘 시간 아니야.”

넥센 코치 정명원의 말이 퍼뜩 생각난다. “그 사람요, 무턱대고 아무나 그렇게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에요. 키울 만한 선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무명이던 정명원은 태평양 시절 김성근의 지옥훈련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그날 이후 기자도 편해졌다. 아직 ‘야구기자’는 아니지만 ‘김성근에게 야구를 물어볼 수 있는 기자’는 된 것이다.

이렇듯 김성근은 한 고비를 넘기기 전에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구단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사장과 단장은 분명 자신보다 위이지만 어떨 때 보면 원수가 따로 없었다. 그는 권한 밖인 선수단 수급과 처우 문제에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 아니라고 하면 끝까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이런 그에게서 경영의 기법을 배운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그를 6번이나 잘리게 만든 유일한 원인이었다.

예전 LG 어윤태 사장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그를 퇴진시키면서 “신바람 야구가 실종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SK 신영철 사장은 말을 아꼈지만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스포테인먼트와 김성근 야구는 결코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가. 김성근이 떠난 LG는 신바람을 내기는커녕 9년째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신생 구단 SK가 이렇게 빨리 명문으로 발돋움한 데는 스포테인먼트가 아니라 우승을 밥 먹듯이 한 김성근의 공이 컸다. 두 사장께서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결국 김성근 야구가 이렇고 저렇고 둘러대는 것은 해임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다른 구단과 팬들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말이다. 일흔이 돼서도 진화를 멈추지 않는 김성근 야구는 이제 더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힘이 들 게 뻔한데 웬만큼 급하지 않고서야 그를 모셔가려는 구단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를 추억하는 팬들은 한동안 시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의 휴식은 이렇게 재앙이다. “감독님, 보고 싶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좋습니다.” 한 팬이 옮겨놓은 ‘야생마’ 이상훈(전 LG 투수)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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