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창세]문화재 보호구역에서 웬 불법농성?

  • 동아일보

이창세 한국전문대학 재정관리자 협의회 연구위원장
이창세 한국전문대학 재정관리자 협의회 연구위원장
서울시청 근처에 직장이 있는 나는 하루에 두 번 이상 서울광장을 지나다닌다.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나는 그곳에 환구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최근 우연히 기사를 보고 환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구단의 정문이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환구단에 대해서 잘 몰랐던 터라 자료를 찾아봤다. 환구단은 1897년 10월 17일 강대국의 문호 개방 압력에 시달리던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천제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제단이라고 한다. 당시 ‘하늘에 올리는 제사’ 즉, 천제는 중국의 황제만 지내는 것이었으나 고종은 당시 그가 머물던 덕수궁 맞은편(현재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환구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하늘에 머리를 조아리고 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침탈한 일제는 1913년 환구단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의 일부를 헐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자료를 읽으면서 일제의 이와 같은 행위가 조선왕조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창경궁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과 같이, 조선의 정기를 훼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자료를 읽으면서 더욱 속상했던 사실이 있다. 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20년도 넘은 1967년, 철도호텔 자리에 웨스틴조선호텔이 재건축되면서 신주를 모시던 팔각 황궁우와 석고단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번에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된 환구단 정문이 우이동의 한 호텔 정문으로 팔렸다가 무려 42년 만인 2009년 12월에야 비로소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되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야 나라의 힘이 없어 그랬다 치더라도 어떻게 광복 뒤 22년이나 지난 후에도 환구단을 세운 고종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을 호텔 정문으로 팔 수 있었을까.

그 후로 나는 환구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라의 운명을 하늘에 기도했던 고종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막상 환구단 앞을 지나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으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진다. 국운을 걸고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환구단 정문 앞에는 농성자들이 앉아 있고, 그 앞 가로수에는 격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가운데인 서울광장 앞, 사적과 문화재보호구역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늦은 퇴근길에 보게 되는 밤 상황은 더 심하다. 농성자들이 침낭을 펼치고 그곳에 누워 있다.

농성자들도 더운 날에 그렇게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표현해야 할 요구가 있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릴 필요는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왕이 국운을 걸고 기도하던 환구단이라는 문화재를 소홀히 대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의미를 되새겨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하려는 때에 그 장소가 불법 농성이나 집회의 장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창세 한국전문대학 재정관리자 협의회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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