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규형]외국인이 한국사 교과서 볼까 두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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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사 교과서 내용에 대해, 그리고 새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현행 교과서 편찬체계 서술상 문제점의 핵심은 이렇다. 만약 한반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제3자가 교과서 가운데 현대사 파트의 중간부분까지 읽고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아마도 대한민국은 큰 문제가 있는 나라이고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고, 북한은 잘나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물론 한국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북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양 체제가 엄청난 격차가 생긴 이유가 있을진대 교과서는 그것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 한국이 광복 후 북한을 비롯한 여타 제3세계 국가들처럼 인민민주주의적 폐쇄체제로 갔어야 한다는 아쉬움마저 묻어난다.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백척간두에서 살린 미국과 유엔의 파병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도 없다. 마치 이들의 개입이 없었으면 ‘민족통일’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저변에 깔린 것은 아닌지.

교과서들은 1948년 4월 김구 김규식과 김일성의 평양회담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한 교과서(지학사)를 제외하곤 이들의 순진한 노력이 김일성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누락했다. 또한 북한의 토지개혁은 무상몰수·무상분배라 서술하며 남한의 유상몰수·유상분배 농지개혁과 대비시켰다. 그러나 북한에서 분배된 토지는 소유권이 없는 경작권(소작권)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훗날 회수해 집단농장화했다는 사실은 명시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북한의 토지개혁이 성공적이었으면 이후 북한 농업의 황폐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다행히 한 교과서(지학사)는 북쪽 농민이 경작권만을 가져 “국가의 땅을 경작하는 셈이었기에 근로의욕의 감퇴를 가져왔다”고 공정히 서술했다.

대한민국 부정 교과서 수정해야

어떤 교과서(미래엔컬처)는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중앙정보부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유럽에서 평화 통일 운동을 하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을 간첩으로 체포”했다고 기술한다. 가공(可恐)할 왜곡이다. 마치 부정선거를 감추기 위해 사건을 발표했다는 듯한 표현도 문제지만 윤이상 이응로는 ‘평화 통일 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북한 관련 불법행위를 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윤이상 등은 공개적으로 도를 넘어선 북한체제 찬양 활동을 해나갔다. 최근 화제가 된 오길남 씨 가족 송환운동에 의해 세상에 더 잘 알려지게 된 윤이상의 반인륜적 행태를 알고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나. 윤 씨의 회유로 입북한 오 씨 가족(부인과 두 딸)은 요덕수용소에 수용됐고 생사를 알지 못한다.

몇몇 교과서는 북한의 인권, 핵 개발, 식량 위기에 대해 책임을 외부에 돌리는 서술을 했다. 권력 세습에 대해서는 1종(지학사)을 제외하고는 ‘권력 계승’ ‘후계 구축’ 등으로 표현했다. 세습을 세습이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고뇌를 방불케 한다. ‘북한이 개방에 나서다’(천재교육)라는 제목의 장은 표피적인 북한의 개방정책을 2쪽에 걸쳐 길게 설명해 마치 진짜 개방에 나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중국 상하이의 발전상을 보며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만 하면 뭐하나. 진정한 개혁개방을 안 하기에 북한이 경제파탄에서 헤매지 않는가.

현대사 서술이 대한민국 중심이 아닌 민족사 중심이다 보니 한국이 근대국민국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 그래서 정부가 수립돼 주권이 확립되고 국민교육에 성공한 것을 경시하고 있다. 한미방위조약 등으로 굳건한 안보체제를 구축하고, 국제협력노선을 택해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점도 과소평가된다. 반면 독재에 대해선 장황하게 강조한다.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체제와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을 무시하고 동일시하거나, 오히려 남쪽 체제를 더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남아 있다. 경제 부분에선 대외 의존, 산업 불균형, 빈부 격차, 근로자 농민의 희생은 자세히 서술되지만, 주도면밀하고 과감한 경제개발계획과 집행은 평가절하되고,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가져온 혜택에는 눈을 감는다. 반세계화 시위를 벌이다 자살한 농민운동가를 상세히 소개하기까지 한다(삼화출판사).

지학사 교과서의 공정한 서술

비교적 공정한 서술을 하려 애쓴 교과서가 있는 것은 다행으로 여겨지고, 전체적으로 경악할 만한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는 개선됐으나 위에 지적한 점 등은 여전히 아쉽다. 원래 국사 교육은 학생들에게 애국심이나 자긍심을 갖게 하는 목적을 내포한다. 그러나 국사학계의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당장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된다. 단지 현 단계에선 공정한 서술을 담보하는 수준에서 새 역사교육과정 개편과 교과서 서술을 진행해 나가기 바란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gka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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