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비꼰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3개 빙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무더기로 따자 한국이 갑자기 빙상 강국으로 떠오른 배경을 분석한다면서 슬쩍 비틀어 교육 실태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코너워크(corner work)가 결정적인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색깔별로 다 확보한 것은 평소에 새치기를 잘했기 때문이란다. 지구력이 열쇠인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시키는 대로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이란다. 스핀이 중요한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뺑뺑이를 많이 돌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치기, 맹목성, 뺑뺑이…. 우리나라 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는 단어들이다. 학습의 목표와 과정을 부모나 교사가 설계하고 학생에게 그대로 주입하면서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성적을 만들어 내려는 현실을 고발하는 씁쓰레한 블랙유머(black humor)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끄집어내는 교육’을 선언하고 나섰다. 학습 내용을 주입하지 않고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과학기술·예술 융합(STEAM) 교육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STEA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의 영어 앞 글자를 모은 것이다.
통합 융합 통섭의 시대에 필요에 따라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의 각 요소를 학습에 적절히 동원하면 분야를 초월하여 창의성을 높이고 문제 해결력을 배양하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융합의 각 요소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과학, 기술, 공학…. 그게 그거 아닌가? 전문가들도 과학과 기술과 공학을 나누어 설명하기 힘든데 교사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과학의 접근법과 공학의 접근법은 확연히 다르다. 과학이 ‘돈으로 지식을 만드는 작업’(make knowledge with money)이라면, 공학은 ‘지식으로 돈을 만드는 작업’(make money with knowledge)이다. 과학은 1%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다면 추구할 가치가 있지만, 공학은 마지막 1%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한다.
과학과 수학의 영역은 또 어떻게 다른가? 수학을 ‘물화생지수’의 틀에서 과학 과목 가운데 하나로 꼽는 것은 올바른가? ‘수학을 잘하면 이과로 간다’는 통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수학이 아니라면 적성이나 진로를 선택하는 데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자녀나 학생에게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애초 나누지 못한 것을 굳이 다시 섞는다고 강조할 필요는 없다.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굳이 융합교육을 주장할 이유는 없다. 제사를 지낸 뒤 남은 밥과 반찬을 한데 모아 비비듯 각 과목의 잔반을 섞어 융합교육을 하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밥에 콩나물, 애호박, 고사리 같은 나물을 얹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만든다. 비빈다고 다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요소가 제각기 맛있어야 비벼도 맛있다. 똑같은 요소라도 잘못 비비면 음식물 찌꺼기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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