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대통령 부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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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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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릿빛 ‘건강한 팔뚝’이 트레이드마크인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아동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 3명 중 1명이 과(過)체중이고 2000년 이후 태어난 아이 중 3분의 1이 잠재적 당뇨병 환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동비만=미국 병’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2월 미셸 여사는 ‘자, 이제 움직입시다(Let’s Move)’ 캠페인을 가동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과자업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초당적인 법안을 준비 중인 미국 의회는 어린이가 먹는 과자류의 설탕 함량을 낮추도록 하는 초안을 14일 마련한다.

▷미국 대통령 부인이 사회적 어젠다를 설정하는 힘은 막강하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1992년 백악관 서관에 ‘대통령 부인실’을 마련하고 건강보험 개혁 프로젝트를 전담했다. 이때의 노력이 지난해 미국 건보개혁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소수민족을 미국 사회에 통합시키는 이민법 제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74년 대통령 부인이 된 지 한 달 만에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던 베티 포드 여사는 여성낙태 지지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안방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들의 사회적 활동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유아교육이나 결식아동 급식 등 복지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소곳하게 한 걸음 뒤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현모양처로 남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 문화에 작용하는 듯하다. 여성의 정치 참여문제를 연구해온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국민이 선출한 것은 대통령이지 대통령 부인은 아니지 않느냐는 과거 인식이 소극적인 대통령 부인상(像)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옥 여사가 대표 프로젝트로 추진하던 ‘한식 세계화’가 구체적 결실 없이 흐지부지되는 모양이다. 50억 원을 들여 뉴욕에 정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을 내겠다는 계획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책 읽어주는 여사님’ 같은 독서운동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의 프로젝트를 심사숙고 없이 선택하지는 않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김 여사가 퇴임 후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지는 대통령 부인 프로젝트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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