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대통령 ‘천신일 실형’ 무겁게 새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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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 어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과 추징금 32억1060만 원이 선고됐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측근이 기소돼 실형이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천 회장은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워크아웃 조기 종료와 세무조사 무마 같은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죄가 인정됐다.

천 회장은 고려대 교우회 회장으로 2007년 정치후원금 기탁과 선거운동을 통해 이 대통령의 당선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천 회장과 이 대통령은 고려대 61학번 동기생이다. 그는 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금융계는 물론이고 국가정보원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결문에 드러났다. 그가 친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자족하고 자중했더라면 이런 수모와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날 때 그를 말리지 않은 권력 주변의 인사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도 책임이 있다. 재판부는 “혈연 지연 학연과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고 죄질도 가볍지 않다”고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짐했지만 측근 비리가 천 회장 하나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최근 현 정부의 대통령정무1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비서관 재임 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측근 비리는 임기 초에는 숨어 있다가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는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꼬리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진보든 보수든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대통령 혼자 깨끗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착각에 빠져 집안과 주변 단속을 소홀히 해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야 명예만으로 살 수 있다지만 주변 사람들은 명예 대신 검은 실속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의 화두로 제시했지만 남은 임기 1년 8개월 동안 대형 게이트가 터지면 공정사회는 물 건너가고 대통령의 권위도 추락할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들과 측근의 비리로 임기 말에 식물 대통령처럼 됐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측근 비리는 곧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50년 지기(知己)인 천 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 선고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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