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군의 컴퓨터 보안에 대한 우려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SW)가 깔린 컴퓨터가 적지 않아 양국 군의 네트워크 연결에 장애가 생길 수 있고, 신종 악성코드를 막는 패치를 자동으로 업데이트 받지 못해 해킹에 취약하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이 3만 명의 사이버 전사를 키우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미국 정부의 걱정을 들어야 하는 딱한 처지다.
국방 전산망은 얼마 전 해킹당한 금융 전산망보다 안전할까. 국방부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악성코드가 네트워크 장애를 유발하고 이동식저장장치(USB 메모리)를 통해 내부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군의 주요 시스템이 보안보다는 효율성 위주로 개발돼 외부의 침입에 취약하다. 해킹코드나 악성코드가 깔린 데스크톱 컴퓨터가 널려 있다. 불법SW가 해커의 통로로 쓰여 전체 전산망을 다운시키는 사태를 걱정해야 한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약한 곳 중 한국 국방부의 PC 한 대당 SW 비용은 6000원으로 30만∼68만 원인 다른 나라 국방부의 1∼2%에 불과하다. SW 활용이 적어서가 아니라 정품이 아닌 복제품을 섞어 쓰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2007년 한글과컴퓨터의 문서작성 프로그램 ‘오피스’를 5년간 66억 원어치를 구입하기로 계약했다. PC 한 대에 5년간 약 3만 원꼴이니 무단복제 아니면 컴퓨터를 꺼놓을 판이다. 작년 국방부 PC 한 대당 전체 SW 구입비는 2만 원으로 전체 공공기관 평균치의 40%였다.
공공부문의 패키지 SW 구입 예산은 작년 1470억 원으로 2006년과 비교해 40%가 줄었다. 정부는 “단품이 아닌 시스템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난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SW 괄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SW를 정부가 돈 내고 사지 않는데 국민이 사겠느냐”고 말했다. 현 정부는 SW산업 육성이나 불법SW 단속에 소극적이다. 검찰의 일제단속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한국은 2009년에야 SW 불법복제 국가 낙인을 벗었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의 조사로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SW 불법복제율은 40%로 전년보다 2%포인트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7%)보다 높지만 세계 평균(42%)보다는 낮다. SW업계에서는 최근 인터넷 접속만으로 SW를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늘어난 덕분이라고 해석한다. BSA는 이번 주 우리 정부에 불법SW 단속 강화를 요청할 예정이다.
김은현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부회장은 “SW 불법복제율이 10%포인트 하락하는 데 8년 걸렸다”면서 “2020년까지는 20%대로 끌어내려야 지적재산보호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0년 37%에서 10년 만에 20%까지 낮췄다. 김 부회장은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초 저작권 침해 처벌을 강화했고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자산관리(SAM)를 도입해 불법SW와 결별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 특히 국방부와 기업계가 SAM에 눈을 떠야 한다. 구입한 SW를 자산으로 보고 관리를 잘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검찰총장과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불법SW 단속 때 기업인이 범죄인 취급을 당하지 않도록 살살 해달라’는 건의가 나왔다. 하지만 SW 불법복제는 책을 훔치는 것과 같은 범죄다. SW 업체를 쓰러뜨리고 일자리까지 없애버리는 무서운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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