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호열]MB의 베를린 제안, 비난과 기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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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한 발언과 제안에 대해 국내외의 반응이 각각이다. 이 대통령은 독일 통일의 심장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통일의 숨결을 느끼고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남북통일도 이루어질 수 있고 그 통일을 위해 우리가 어느 정도 희생할 가치가 있음을 토로했다. 한독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촉구하고 북한이 이에 응할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할 의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국내 반응은 반신반의이고 북한은 냉담하다 못해 야멸치다. 국내 보수층은 대통령의 제안 의도와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김정일 위원장이 실제 서울을 방문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야당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전해진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엇박자, 동문서답이라고 비판하거나 ‘여우와 두루미’ 이솝우화를 빗대 그 진정성을 의심한다. 당사자인 북한은 조선신보를 통해 ‘불순한 기도’로 매도했고 조평통 대변인을 통해 ‘역도의 도전적 망발’이라며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 ‘비핵개방 3000’을 대북정책의 화두로 제시한 이래 ‘상생과 공영’ ‘한반도 신평화 구상’ ‘그랜드바겐’ ‘3대 공동체 통일구상’ 등 일련의 정책 구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반 동안 남북관계는 경색을 면치 못했다. 남북관계의 현실과 주변 정세의 변화로 대북정책이 의도한 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정책 자체에 대한 대내외적 오해와 비판 역시 끊이지 않다 보니 안팎으로 추진 동력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당위적 추상적 제안 구체화해야

베를린 제안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정책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베를린 제안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민족의 재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통수권자의 각오와 비전을 담고는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 목표는 제시됐으나 실현 수단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단지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혼란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통일이 어렵다거나 통일을 위해서라도 비핵화를 우선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비핵개방 3000’ 구상에서 비핵이 선결조건이냐, 북한 개방과 병행 추진하는 것이냐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이번 발언에서도 비핵화만 이루어지면 통일이 되는 것인가를 놓고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여지가 있다.

둘째, 남북관계를 개선함으로써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참가국 모두가 동의했다. 남북대화의 전제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시인 사과 등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원칙 또한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6자회담 재개나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베를린 제안의 행간을 읽다 보면 남북 양자 간 대화를 통한 해법에 원칙적 장애가 있다면 6자회담과 같은 다자 틀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

셋째, 김정일 위원장은 방식이야 어떻든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고 이것이 이 대통령이 이미 수차례 제안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면 내년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기에 앞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있어야 할 것이다. 베를린 제안은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국제협력에 중점을 두는 한편,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못지않게 중대한 핵안보정상회의를 부각시키기 위한 측면이 있었음을 이해하지만 국제회의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기에 앞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의 의지와 가능성을 좀 더 열어놨어야 한다. 조건도 없이, 보상도 없이 모든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논의할 수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에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망발’이라 반발한 北유인책 필요

11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열었다. 사전 협상과 조율을 통해 합의된 사항을 극적으로 연출했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작품이다. 이 대통령은 그와는 다른 방식, 차별화된 원칙하에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그런 방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의도의 순수성과 더불어 상대를 설득할 명분과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실리가 수반돼야 한다. 북한체제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 의도를 갖고 발표한 제안이 북에 ‘망발’로 비친다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그저 한 번 해본 제안에 그치고 말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정책 당국자들은 시급히 후속 조치를 마련하여 구체적 의제를 중심으로 남북 대화를 제안하고 대화 환경을 진지하게 조성해야만 베를린 제안의 의미가 있다.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yoohy@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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