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민주화 운동과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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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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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실종자들의 가족 모임인 ‘5월 어머니회’는 강령으로 금전적 보상을 거부한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금전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금전적 보상은 인간 생명을 금전으로 격하시키는 일이라는 이유다. 이들은 기념물 건립도 거부한다. 기념물이 민주화 투쟁 정신을 돌 속에 가둬 희석시키는 것을 우려해서다. 이들은 자식의 희생정신이 현재의 투쟁을 통해 기념되기를 원한다. ‘5월 어머니회’의 높은 기준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통하지 않았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교육부 장관이던 1998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피해를 인정받아 억대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전 총리가 나중에 이 돈을 자신이 만든 ‘오월정의상’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까지 된 사람이 보상금까지 신청해 받았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비단 이 전 총리의 일만은 아니다. 당시 정치인 35명이 비슷한 보상을 받았다.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어제 “국민은 민주화운동에 대해 보상해줄 만큼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보상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권력 장악과 명예회복,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금전적 보상도 있었다”고 답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고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주도하며 평생 운동권으로 살아온 그의 말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의 눈에는 끊임없이 민주화 경력을 들먹이며 뭔가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2000년 8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혹은 부상자 752명에게 400억 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4012명에게 생활지원금 명목으로 682억 원이 지원됐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내년쯤 활동을 종료할 계획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금전적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한국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글에서 “광주항쟁 등의 덕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 거액의 보상까지 받아낸 것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경력을 팔아 돈을 챙기려는 탐욕의 화신’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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