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접하는 장애인 극단의 공연. 처음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 장애인 극단 다이헨(態變)의 연극 ‘황웅도 잠복기’였다. 이 극단은 21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 ‘한국문화의 집’에서 첫 공연을 하기에 앞서 이날 낮 취재진을 상대로 주요 장면을 20분간 보여줬다.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성사된 공연이었다.
사지가 뒤틀리고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 보이는 중증 장애인 배우들은 몸의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타이츠(레오타드)를 입고 무대 바닥을 무릎으로 걷고, 기고, 굴렀다. 극은 190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뒤 전통연희단체를 창립하고 공연 예술을 통한 독립운동을 펼친 황웅도의 일대기를 그렸다.
극단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김만리 씨는 재일교포 2세로 주인공 황웅도의 첫 부인이자 한국 고전무용의 명인인 김홍주 씨의 딸이다. 자신도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뒤 휠체어에 의존하는 중증 장애인으로 이 작품에서 김홍주를 연기했다.
21일 본공연을 보기에 앞서 한참을 망설였다. 대사가 없는 무언극에 2시간 30분이라는 긴 공연시간, 그리고 취재진 대상의 공연에서 받은 ‘보기 괴롭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망설임 끝에 들어간 공연장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극이 진행되면서 배우들이 장애인이라는 의식은 차츰 희미해졌다.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일부로 녹아들면서 이들의 움직임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지체장애인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과 몸짓 덕분에 일제의 폭압에 고통 받는 민초들에 대한 형상화가 더없이 탁월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관객이 섞인 객석의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막이 내리자 몇몇 관객은 기립박수를 쳤다.
이날 완성도 높은 공연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시각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한편으론 동정하면서도 ‘정상인과는 다르다’는 뿌리 깊은 인식 말이다. 어떤 면에선 장애인 스스로도 자격지심에 갇혀 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공연을 본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의 1급 지체장애인 김지수 씨(39)의 말에서 실마리가 보였다. “한국의 장애인 극단은 장애의 아픔을 부각시키기 일쑤인데 오늘 공연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가 안 보였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목격했다.”
이번 공연은 22일까지 서울에서 두 번 공연한 뒤 황웅도의 고향인 고성에서 25일 한 차례 더 공연한다. 더 많은 사람이 이 공연을 접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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