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모래폭풍에 휘말리는 세계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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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튀니지의 재스민 향(香)으로 촉발된 민중혁명이 사하라 지역에 거센 모래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온 천지에 태양(sun) 바다(sea) 모래(sand)만 가득하다는 열정의 3S 국가들이 민중의 함성과 독재정권의 총성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정권을 무너뜨린 거센 폭풍이 이번에는 리비아를 휩쓸고 있으니, 42년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운명도 머지않아 나락(奈落)에 떨어질 것 같다. 민중혁명의 열기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레인과 예멘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에까지 미치고 있어 중동의 정세도 불안하게만 보인다.

리비아 사태를 계기로 사하라 사풍(砂風)의 파장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당장 국제유가는 2년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세계 금융시장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던 세계 경제는 더블딥의 불안에 휩싸였고, 일부에서는 벌써 1970, 80년대에 이은 3차 오일쇼크를 경고하고 나섰다. 과연 글로벌 경제는 모래폭풍에 휘말려 다시 주저앉게 될 것인가.

리비아 사태가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달리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으로 세계 8위의 매장량을 보일 뿐 아니라 사하라의 모래폭풍을 중동의 주요 산유국으로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리비아는 세계 생산량의 2%에 불과한 1일 160만 배럴을 공급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에 일파만파(一波萬波)의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더블딥과 오일쇼크의 먹구름

물론 최근의 유가급등이 일시적인 과잉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리비아 사태가 향후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우디 단독으로도 400만 배럴의 증산 여력이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도 리비아 생산량의 11배가 넘는 분량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수급통계에 바탕을 둔 정태적인 전망에 불과할 뿐 이번 모래폭풍으로 치솟은 유가는 쉽게 평온을 되찾기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중동의 산유국으로 향하는 민주화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 지역의 혼란이 조기에 수습된다 해도 국제유가는 세계 경제의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상승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세계 경제는 곡물가격의 폭등과 원자재 가격의 불안, 경제회복과 금융완화 정책에 따른 수요 증대에 유가 폭등까지 겹쳐 심각한 인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회복과 달러 가치의 하락을 유도하고 있으니 어떻게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덫을 피해 갈 수 있겠는가.

특히 최근에는 국가 간 정책 공조마저 무너져 세계 경제의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차이나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과 긴축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미국은 오히려 자국 경제의 회복을 내세워 금융완화를 고집하고 있다. 두 나라의 환율전쟁도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 상태이다. 겉으론 모두 글로벌 경제의 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긴축과 팽창의 상반된 정책이 동시에 실시되고 있다. 브릭스(BRICs)는 과열을 걱정하고, 미국은 경기회복을 내세우고, 유로권은 재정위기를 앞세워 제각각 1인3각(一人三脚)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우리 경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당장 유가가 10%만 상승해도 성장률은 0.2%포인트 떨어지고, 경상수지 적자는 20억 달러 증가한다고 한다. 특히 우리 산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생산단위당 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많아 유가 급등에 따른 잠재적 위험이 어떤 국가보다도 훨씬 높다. 또 원유 수입의 82%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모래폭풍에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어려움은 유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은 여기에 금리와 환율을 더해 이자와 원화, 유가가 높은 3고(三高)시대에 대비해야 하고, 서민들은 그 많은 가계부채에 전세파동과 구제역, 물가불안까지 감당해 나가야 한다.

성장 연연 말고 안정기반 다져야

정부는 작년 6% 성장을 계기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이제야말로 진정한 정책능력을 보여줄 시점이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고환율과 저금리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중되는 물가불안의 위험 속에 3고를 극복하며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당장 눈앞의 성장에 연연하지 말고, 안정 기반을 다지며, 지나치게 외부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가를 빌미로 기업을 윽박지르기에 앞서 정부가 먼저 새로운 정책의 큰 틀을 제시해야 한다.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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