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승]기업혁신을 이끌어내는 눈

  • Array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미국의 장수 비즈니스 잡지 ‘포천’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대공황 시절이던 1930년 창간됐다. 월가 붕괴 넉 달 후 헨리 루스가 창간했다. 루스의 파트너였던 브리턴 헤이든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경제지 발간에 회의적이었으나 루스는 창간을 강행했다.

포천은 당시로선 여러모로 파격이었다. 큰 판형에 크림색 두꺼운 종이, 컬러로 인쇄된 다양한 통계자료와 일러스트, 특수 처리된 근사한 표지까지 포천은 경기 침체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잡지였다. 주간 포천의 첫 호는 1달러로 당시 주간이던 뉴욕타임스가 5센트에 판매되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 역시 파격이었다.

무엇보다 루스가 탁월했던 점은 독자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돈 버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경제잡지들과는 달리 포천은 딱딱한 경제동향 말고 다양한 분야 사업 전망, 주가 예측, 회사 경영, 비즈니스계를 이끌 새로운 사상 등을 다루며 경기 침체로 절망하는 독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했다.

독자 의중 꿰뚫은 포천誌의 성공

잡지 이름이 ‘포천’인 것도 성공에 한몫을 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개 잡지 타이틀은 잡지의 성격을 나타내는 정보성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독자는 그들이 좇는 ‘가치’를 타이틀로 내건 잡지에 더 끌린다. 수많은 경제지가 ‘이코노미’라는 단어를 달고 있지만 독자들에겐 ‘포천’이라는 단어가 더 매력적이다. 포천을 구입하는 순간 독자들은 잠시 행운을 손에 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는 경제 침체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파격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혁신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혁신의 실마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기업은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이윤을 얻는다. 따라서 고객이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의 욕망과 수요를 읽고 그들의 마음에서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1900년대 초 일본인 과학자 사토리 가토가 ‘인스턴트 커피’ 기술을 발명했지만, 그것이 히트를 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때 네스카페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국인들이 값싸게 커피를 마시는 방법으로 이를 활용하면서부터였다. 전 세계를 뒤흔든 애플의 ‘아이팟 신화’가 광범위한 MP3플레이어 부흥으로 이어진 것도 1000∼2000장의 CD를 하나에 담을 수 있는 매력에 빠진 경기 침체기의 소비자들 덕분이었다.

혁신의 실마리를 고객의 마음에서 찾기 위해서는 고객의 사고와 행동을 정교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뇌를 들여다봐야 한다. 소비자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봐야만 기술 혁신의 돌파구가 마련된다. 일례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오랫동안 신규 계좌가 늘지 않자 디자인회사 IDEO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IDEO는 은행의 잠재적 고객들이 돈에 관해 어떤 불편함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귀찮을 정도로 면밀히 관찰했다. 이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혁신의 실마리는 바로 잔돈. 어렸을 때 우리는 잔돈을 지갑에 넣어 잘 관리하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지만 어른이 되면 동전들을 귀찮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주머니에 잔돈이 있어도 꺼내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지폐로 계산을 한다. 주머니에 모아둔 잔돈은 퇴근 후 저금통에 쏟아 붓고, 나중에 이를 지폐로 바꾸면서 마치 곗돈이라도 탄 듯 기뻐한다는 것이 그들의 관찰이었다.

그래서 IDEO의 제안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잔돈을 모아주는 계좌를 신설했다. 계산할 때마다 생기는 잔돈을 모아주는 계좌를 만들어 주 통장과 연동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계좌 덕분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5년 동안 1000만 개가 넘는 신규 계좌를 열 수 있었다. 고객의 사소한 행동에서 혁신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혁신의 실마리는 널려 있어

산악자전거로 유명한 시마노자전거는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 때 어려웠지만 ‘체인 없는 자전거’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것 역시 고객의 마음과 행동을 관찰한 결과였다. 고객들은 자전거를 탈 때 종종 체인이 빠져 나무젓가락으로 체인을 끼우며 손이 기름 범벅이 되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50단 기어에 초경량 티타늄 자전거가 아니라 맘껏 즐길 수 있는 체인 없는 자전거였던 것이다.

연초가 되면 기업은 기술 혁신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혁신이 어려운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도처에 산재해 있는 혁신의 실마리를 발견할 ‘눈’이 없어서다. 올해는 기업이 덩치 큰 장비에만 투자하지 말고, ‘매의 날카로운 눈’으로 고객의 마음을 새롭게 읽는 통찰력에 투자했으면 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