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어둠의 공화국과 3+1

  • 동아일보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북한은 어둡다. 전근대적인 3대 세습, 식량난, 인권 유린 실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전기가 부족해서, 말 그대로 컴컴하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실무접촉을 진행하던 2000년 5월의 일을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담았다. 북한의 전력난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헬리콥터 편으로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화국’의 비 내리는 밤하늘을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따라 저공으로 날았다.… 이 폭우 속의 위험한 비행에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록영화를 함께 보자면서 “북쪽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전압이 고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보는 데도 지장이 될 때가 있어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요해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도 이 책에 보인다.

일제강점기 압록강 하구에 건설한 수풍댐 1호기의 발전량이 세계 최대였고, 분단 후 북한의 갑작스러운 단전 조치로 남한이 애를 먹었던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전기만이 아니다. 북한의 도로 철도 공항은 197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04년 4월 22일 평안북도 용천군 용천역에서 열차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붕대가 없어서 어린이들이 천 조각으로 상처를 둘러맸다. 사회간접자본이 얼마나 뒤떨어졌는가를 논하는 일이 사치스러울 정도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전에 박지원 특사를 중국 베이징에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네 집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마당에 식량난 등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주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동생네 집’이 가난해도 보통 가난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독일을 생각해 보자. 서독은 동독보다 인구가 3.8배, 1인당 국민총소득이 2.1배, 무역규모가 13.1배였다. 1990년에 통일이 되자 서독은 동독 주민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해 15년간 1750조 원을 지출했다.(염돈재,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

후유증은 20년의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지난해 독일의 경제성장률 3.6%는 통일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동서독을 합치면서 얼마나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남북 격차는 동서독보다 심하다. 남한 인구는 북한의 2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18배, 무역규모는 224배. 이런 북한에 당장은 식량과 비료와 의료품을 지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과 같은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통일비용은 누가 어떻게 마련하나.

평양에서 돌아올 때의 심정을 임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70분가량 비행하니 착륙지점을 알리는 횃불이 보였다. 밤 9시 30분경 개성 근처에 착륙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30분쯤 후에 나는 무사히 군사분계선을 넘어 불빛이 환한 자유의 땅으로 돌아왔다.”

횃불이 아니라 전기로 북녘 땅을 밝게 비출 수 있을까. 3+1(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과 반값 대학 등록금)을 시행하면서도? 민주당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재·보선→총선→대선에서 내놓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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