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 대화 틀’ 근본을 재검토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북한이 때리면 맞고 발로 차면 넘어지고 핵 공갈을 쳐도 속수무책이다. 그러다가 아무런 사과도 없이 조폭이 ‘지갑 내놓으라’고 하듯 회담하자고 하면 응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숙명일 수는 없다. 저들이 하자는 회담은 ‘민족끼리’니, 인도(人道)니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해도 결국은 달러와 쌀과 비료를 달라는 것이다. 지난날 남쪽이 퍼준 달러는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인 것은 거의 없고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되거나 김정일과 군당정(軍黨政) 및 주민탄압 보안기관과 특권층의 배만 부르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북이 제의한 회담에는 비핵화 문제도, 진정한 한반도 평화문제도 들어 있지 않다. 이번에도 북은 북핵과 천안함, 연평도 사태와 관련해서는 일언반구 언급 없이 적십자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에 대해 회담을 하잔다. 저들은 체제 보장과 평화 문제는 미국과 맞상대하고, 남한은 그저 경제적으로 자신들을 돕는 역할만 하면 된다는 ‘회담 틀’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다.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이런 남북 대화 구도를 받아들일 것인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저자세로 퍼주면 잠시 ‘민족끼리’를 외치다가 돌아서면 민족을 향해 도발을 거듭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서해 도발에, 핵 실험에, 미사일 발사에 할 짓은 다 했던 저들이다.

이쯤에서 남북 대화 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이 큰소리를 치고 남은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정부는 북의 도발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고 남북의 모든 현안을 다루는 회담 틀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북의 대화 공세와 우리 정부의 함량 미달 대응을 확인하자면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다. 북은 지난해 9월 추석을 불과 12일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 북은 천안함 폭침 도발로 초래된 위기를 희석하면서 쌀 지원을 요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는 북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선제적 대응을 못 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 이산가족의 상시 교환방문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북이 설정한 틀에 따라 회담에 응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는 수준으로는 항상 후수(後手)밖에 둘 수 없다. 북은 1일 공동사설, 5일 정부 정당 단체 연합성명, 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대화를 거론한 뒤 어제 회담 개최를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냈지만 무력 도발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저들의 목표는 남북 경색을 불러온 현안 해결이 아니라 남한 흔들기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정책 기조로 ‘비핵 개방 3000’을 내걸었다. 이것을 폐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북에 ‘비핵 개방 3000’을 놓고 회담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마침 북은 “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주장했다. 어제 통일부가 밝힌 북의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및 추가도발 방지에 대한 확약,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 차원의 남북 당국 대화 제의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북이 비핵 회담을 거부하면 대화 제의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정상적인 남북관계는 북이 주도하는 남북 대화구도를 청산해야 가능해진다. 북의 ‘위장평화 공세’에 포로처럼 끌려다닐 일이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