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6자회담 다시 해도 실패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7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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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을 가동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북한은 6자회담을 간절히 바란다. 자신들이 호언장담한 2012년 강성대국 달성을 위해서는 시간과 반대급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북은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 경제 강국을 강성대국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정치사상 강국은 후계 세습체제의 완성, 군사 강국은 핵무장을 의미한다. 북은 2009년 들어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 강국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판단 하에 경제 강국 건설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이 셋을 모두 달성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시간도 벌어야 하고 돈도 챙겨야 한다. 한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국제 제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숨통을 트려면 6자회담만큼 좋은 판이 없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도 6자회담이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북한 핵을 마냥 내버려둘 수 없고 남북간 긴장도 컨트롤해야 한다. 어떤 모양새로든 6자회담은 열릴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북핵 협상과 합의는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선의(善意)를 전제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북이 핵 포기의 선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회담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를 보자. 경수로를 지어주면 영변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북은 경수로 건설이 상당히 진척되자 2002년 미국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를 고의로 흘려 합의를 깨버렸다. 핵시설 해체 단계까지 나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005년 6자회담으로 도출된 9·19합의도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포기’가 궁극의 목표였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동결-불능화-신고-검증-폐기라는 로드맵을 가동시켰고, 북은 효용가치를 다한 영변 5MW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벌였다. 그러나 신고와 검증의 중간단계에서 막혀버렸다. 더 이상 진전해 폐기에까지 이르는 것을 북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두 번 모두 북은 손해 본 게 없었다. 중유 쌀 비료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경제적 지원을 챙겼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제재에서도 벗어났다. 시간과 돈을 벌어 두 번이나 핵실험을 할 정도로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피치를 올렸다. 한국 미국 일본은 경수로 건설에 15억 달러를 쏟아 붓는 손해를 봐야했다.

북의 관심은 이제 우라늄 핵 개발이다. 우라늄 핵은 플루토늄 핵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들기 용이하고 숨기기 쉽다. 북은 2009년 6월 우라늄 농축 착수를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의 핵전문가를 불러 우라늄 농축시설을 과시했다. 폭파한 영변 냉각탑 자리에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7월부터 25∼30MW 용량의 소형 경수로도 건설 중이다. ‘평화적 핵 이용’을 가장해 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방식의 6자회담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용준 전 북핵담당대사(현 말레이시아 대사)는 저서 ‘게임의 종말’에서 “북이 핵과 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처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비핵화 협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한국과 세계가 진짜 할 일이다. 이게 안 되면 동북아가 새로운 핵 경쟁의 장이 될 지도 모른다.

이진녕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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