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윤증현 장관의 ‘내수 키우기’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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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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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은 수출 덕분에 가능했다. 수출이 성장과 고용을 가져다주면서 자부심과 긍지가 따라왔다. 하지만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한국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3%나 돼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우리 경제가 수입국 경기에 좌우된다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수출주도 경제를 내수주도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서울 액션플랜’은 한국과 같은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외 수요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국내 성장동력에 초점을 둔 개혁을 하라’고 요구한다.

수출 대신 내수를 계획적으로 키우기는 쉽지 않다. 중남미 국가와 인도는 수입대체 제조업을 키우려 했다가 성장 둔화나 외환위기에 빠져 고생한 경험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이 중소기업과 서비스산업 위주의 내수부양책을 썼지만 평가가 엇갈린다.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70년대 이후 수출로 고성장을 이룬 나라 중에서 내수중심으로 전환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내수주도형은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경제다.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국민의 소비율(개인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50년 평균치인 0.92 정도로 한동안 유지되다 2002, 2003년 1에 육박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율 1은 소득을 모두 소비지출에 쓴 경우다. 미국인들은 거품으로 불어난 자산과 해외에서 빌린 돈으로 과소비를 즐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소비를 최대한 줄여 정상화의 길로 가고 있다.

한국은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하지는 않더라도 내수의 지나친 위축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민간소비를 키워 내수를 자극했더라면 2008년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수출 중심의 정책편향을 줄이고 비(非)교역재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내수확대가 우리보다 더 절실해진 중국은 ‘12차 5개년 규획’에 따라 내년부터 경제정책의 초점을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 옮길 계획이다. 중국의 대대적인 소비확대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서비스산업 육성 방안을 여러 번 내놓았다. G20 정상회의 직후에는 내수활성화 드라이브를 약속했다. 하지만 실천은 약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의료 교육 같은 분야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 사이의 대립으로 정책 추진력이 확보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잊을 만하면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가속화하겠다”고 했지만 립서비스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G20도 마무리됐으니 이제 윤 장관은 밀린 숙제를 서둘러 해야 한다.

내수를 키우는 일은 내국인의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거나 외국인을 불러들여 국내에서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관광 교육 사업서비스처럼 산업 규모가 커질 분야가 적지 않다. 우리 서비스산업과 내수의 현주소는 외국인 의료관광객 수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료관광객은 2007년 1만6000명에서 지난해 6만 명으로 급증해 이 분야의 경쟁력이 확인됐다. 올해 유치 목표 8만 명도 쉽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그래 봤자 지난해 싱가포르가 유치한 63만 명의 13%에 불과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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