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원로-젊은 영화감독들의 뜻깊은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해마다 거르지 않고 부산에 왔지만 이렇게 후배들과 마주앉아 이야기해보는 건 처음이야. 기쁘네, 정말. 고맙기도 하고.”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마무리하는 14일 밤. 올해를 끝으로 물러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작별’을 고하는 파티가 끝난 뒤 해운대의 한 주점에서 뜻 깊은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정창화(82) 김수용(81) 김기덕(76) 이장호(65) 등 원로 감독들의 요청으로 ‘워낭소리’의 이충렬(44),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37), ‘똥파리’의 양익준(35) 등 젊은 영화감독 10여 명이 선배들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연방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고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 자리에 있던 원로 감독 네 명은 모두 우리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 액션영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정창화 감독은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죽음의 다섯 손가락’ 등 5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김수용 감독은 1960년대 ‘갯마을’ ‘안개’ 등의 작품으로 문예영화의 전성기를 열었고, 김기덕 감독은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히트작 ‘맨발의 청춘’(1964년) 등 7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이장호 감독도 1970, 80년대 최고 흥행감독의 한 사람이었다.

수십 년 나이 차가 나는 선후배 감독들의 화기애애한 만남이 각별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이는 이런 자리가 그동안 좀처럼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지사를 깡그리 잊은 듯 세대 간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영화계만의 이상한 현상”이라는 정창화 감독의 말에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머쓱해하는 후배들을 김수용 감독이 따뜻한 말로 감쌌다.

“영화라는 게 원래 세상의 큰 흐름에 한 발짝 앞서 가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잖아. 나는 오히려 우리가 요즘 후배들이 어떤 주제를 어떻게 얘기하고 싶어 하는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보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부산영화제 플래시포워드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존 쿠퍼 미국 선댄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참여하는 영화인과 관객이 대부분 젊은층인 것은 부산영화제의 놀라운 점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종적인 네트워크를 돈독하게 하는 소통의 자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부산영화제뿐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의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부산에서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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