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시위대 해산용 장비인 ‘음향대포(지향성 음향장비)’ 도입을 위한 입찰공고를 관련 법 규정인 ‘경찰장비 사용기준 개정안’(대통령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에 조달청을 통해 낸 사실이 5일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6일 이 장비의 구매요청을 했고, 같은 달 16일 입찰공고를 냈다. 경찰은 입찰공고에서 이 장비를 ‘고효율 방송장비’라고 표시했다. 하지만 경찰이 요구한 장비 품목과 외관은 이달 1일 경찰이 공개 시연한 ‘지향성 음향장비’와 똑같았다. 같은 장비를 이름만 바꿔 입찰 공고한 이유는 아직 지향성 음향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관련 규정이 입법예고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애초 구매 계획이 없어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던 이 장비를 사들이기 위해 기존 시위 진압장비 예산 가운데 남은 예산 2억3000만 원을 배정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장비에 경고음 기능이 없으면 위해성 장비가 아니기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법 개정 전에는 이 장비에 경고음을 넣지 않고 시위대의 해산을 권고하는 방송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음향대포’로 사용될 장비를 ‘방송장비’ 명목으로 구매한 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으로, ‘편법’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법제처 관계자는 “사용 근거 법령도 없는데 미리 장비부터 사놓은 꼴”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장비를 도입한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다. 경찰은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고성능 방송용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시위대 해산을 권유하는 방송장비는 이미 경찰이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지향성 음향장비는 이번에 국내에 처음 도입된다. 경찰청이 개최한 시연회에 참석한 기자들이 불과 몇 초 만에 고막의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이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장비의 안전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지 검토에 나섰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면 입법예고 기간 중 인권위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경비통’인 조현오 경찰청장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당장 ‘고효율 방송장비’가 없더라도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대들을 해산하는 데 막대한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니다.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만큼 철저히 안전성을 검증하고 입법예고 기간에 관련 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장비를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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