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추석 선물

동아일보 입력 2010-09-14 03:00수정 2014-08-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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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울러 민족의 명절 추석도 다가온다. 서울 시내에서 명절을 느끼는 새로운 풍경이 있다. 선물 배송으로 교통이 막히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선물을 받아 기분 나쁠 사람이 있을까. 마음과 정성을 담은 선물은 받는 이에겐 기쁨이요 풍성함이다. 고향을 찾는 이들의 손에는 으레 부모님께 드릴 선물 하나씩은 들려 있다.

그래서인지 추석 무렵이면 백화점이나 마트는 한껏 치장한 선물상품으로 대목을 노리고 신문의 전단지엔 각종 선물세트 광고가 넘쳐난다. 그런데, 법조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선물을 바라보는 눈이 편치만은 않다. 선물이, 또 인사치레가 뇌물이라는 화가 되어 돌아오는 예를 많이도 보다 보니 저렇게 넘쳐나는 선물을 그저 풍요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염려가 있다.

선물의 문제점은 일단 공짜라는 점이다. 또한 어떤 대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추석 선물세트는 꽤 비싸다. 포장이 크고 화려하다.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순수함과 소박함만은 아니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게다가 명절에 오가는 선물 행렬을 보면 지나친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선물하는 이는 어떤 선물을 얼마나 해야 하나 고민이 크고, 받는 이는 고맙지만 자신에게 별로 필요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중한 것도 잘 모른다. 이럼에도 계속 과일바구니를, 고기상자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걸까

명절 선물이 지역 경제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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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법원은 선물문화가 없었다. 직원들 간에 주고받는 것도 없었고 더구나 외부 사람이 선물을 보내오는 일도 없었다. 판사 초년시절 그런 분위기가 좀 삭막하긴 하지만 서로 부담이 없어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일반 기업체나 다른 분야 사람은 명절이면 많은 선물을 받고 그것이 넘쳐 오히려 버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당시 선배판사 몇 분이 농담 삼아 이런 말도 했다. 명절에 집으로 배달되는 사과상자 하나 없어 아파트 경비원 보기도 민망하니 계를 들어 서로 사과라도 보내주자고. 그런 쓸쓸함이 뭐했던지 언제부터인가 법원에서도 직원들한테 김 한 통이라도 나누어주는 풍습은 생긴 것 같다.

서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선물을 한다는 좋은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선물과 뇌물의 한계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마냥 좋은 마음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선물이라는 게 결국 무언가의 답례나 부탁으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고로 업무와 연관된 경우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 직원과 납품업체, 공무원과 민원인, 학교 교사와 학부모, 방송국 직원과 연예인, 기자와 출입처 등등 어찌 보면 모든 관계에서 순수성을 찾기가 어렵다. 더구나 선물은 점점 더 고가가 되고 과대포장은 쓰레기 즉, 환경 문제도 야기한다. 이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노라면 늘 따라오는 변명이 있다. 경제 문제다. 농수산물, 포장, 유통 등 산업 살리기에 선물이 일조를 하므로 이를 마냥 나무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년 전 행정재판을 담당할 때, 초대형 퇴폐 유흥업소를 단속하니 거기에 딸린 위생업체와 식음료업체가 줄도산을 한다고 단속기관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역경제가 그 업소에 크게 의존하는데 업체가 영업정지나 취소를 당하게 되면 그 지역이 모두 어렵다는 말이었다. 퇴폐업소를 살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발상이 이해되지 않았다. 선물문화에 대한 비판이 경제 살리기를 방해하는 논리로 치부된다면 아예 말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우리의 형법은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뇌물수수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다스리고 뇌물액수가 1억 원을 넘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가중처벌하고 있다. 공무원뿐 아니다. 금융기관 임직원의 경우에는 공무원에 준해서 처벌을 받는다. 사기업체 직원이라도 직무와 관련해서 금품을 수수하면 배임수재라는 죄목으로 5년 이하의 징역형 처벌을 받는다. 누구라도 선물에 무심하다 보면, 의례적 선물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뇌물죄와 연관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순수한 선물이 얼마나 될까

최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과 관련된 교사들의 뇌물수수사건으로 많은 교사가 형사처벌을 받고 아울러 무거운 징계처분까지 받았다. 상급자에게 500만 원 이상 건넨 사람들도 형사적으로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모두 파면되었다. 아마 당사자들은 당시에 그런 정도의 인사치레가 이렇게 형사상 큰 죄가 되고 직업을 잃는 등 자신의 모든 장래를 망친다는 사실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물을 그냥 편안히만 주고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처럼의 민속명절 기분을 망치자는 말은 아니지만 교통까지 막힐 정도로 많이 오가는 선물 행렬을 보면 뇌물죄의 법정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 것 같다.

김영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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