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사고→은폐→핑계… 바뀌지 않는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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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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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군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초기에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샀다”는 자탄이었다. “기강을 바로잡아 천안함 사태로 땅에 떨어진 명예를 되찾고 대국민 신뢰를 얻겠다”는 다짐도 빠지지 않았다. 군이 회식을 자제하는 바람에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와 부대 인근 음식점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나 이런 다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변화는커녕 오히려 군 기강의 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각종 사건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7월 초 영관급 장교들이 민간인과 함께 특수부대의 작전용 군용보트로 유람을 즐기다 전복되는 사고가 났다. 7월 말에는 K21 장갑차가 도하훈련 중 침수돼 조종 교관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8월 말에는 혁신적으로 품질이 좋아졌다고 자랑했던 신형 전투화에 물이 새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이 아니다. 공군과 해병대 영관급 장교가 성범죄로 물의를 일으켜 고발되기도 했다.

사고를 은폐하려는 군의 고질적인 악습도 여전했다. 6일에는 육군 K1 전차의 포탄이 8월 초 포신 안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육군은 K1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인명 피해가 없어 발표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했다. 전투화 문제도 그동안 군 장병들이 수차례 문제점을 제기했으나 묵살해오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뒤에야 개선조치를 취했다.

국가안보가 관계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는 군의 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군이 6일 오전 K1 사고에 대한 브리핑에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나서 발표하려 했다”고 해명한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최근 10여 년간 같은 사고가 8차례 일어난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K1 사고는 군이 10년 동안 감추는 데만 급급했을 뿐 대책을 찾지 못한 셈이다.

군 관계자들은 “군을 믿어주지 않고 지나치게 깎아내리려고만 한다”며 언론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군이야말로 언론을 믿지 못하고 늘 경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이제라도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고칠지 진지한 고민을 해볼 때다. 기자들도 “군의 설명이 의혹 없는 사실”이라고 국민에게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성운 정치부 polaris@donga.com

北 포탄 또 NLL 넘어와도 ‘속수무책’
▲2010년 8월17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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