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國璽)는 헌법개정 공포문 전문,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 등 외교문서, 훈포장증,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공무원의 임명장 날인에 사용된다. 국새는 행정안전부 의정관실의 이중금고 속에 보관하며 하루 평균 50여 장의 중요 문서에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를 찍고 있다.
가로세로 9.9cm, 무게 2.9kg의 국새에는 단순한 도장 이상의 상서로운 함의가 담겨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국새는 국권과 정통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반납하고, 새 국새를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실현되지 않다가 1403년 태종 3년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란 국인(國印)을 받아 대중국 외교문서에만 사용했다. 그리고 갑오경장 이후에서야 비로소 우리 손으로 국새를 제작해 사용했다. 나라를 잃을 위기에 처한 고종이 외국 황제들에게 외교적 지원을 호소하는 친서를 보낼 때 사용한 비밀 국새인 ‘황제어새(皇帝御璽)’는 2008년 재미동포로부터 사들여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 왕조 임금의 친서에 쓰인 국새의 실물이 확인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잃어버렸던 국새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정부 수립 이후 4개의 국새가 만들어졌다. 1999년 제작된 제3대 국새에 균열이 발견되자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제4대 국새 제작에 나섰다. 국민제안과 국민설문조사, 국새 모형 공모 등 요란한 절차를 거쳐 민홍규 씨가 국새제작단장으로 뽑혔다. 여기에는 민 씨가 ‘국새가 깨져 국운이 샌다’며 행안부와 각 기관에 줄기차게 진정서를 냈고, 감사원 감사에서 실제로 균열이 발견되면서 그의 존재가 부각됐다고 한다. 민 씨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문가 자문위원과 장인들을 동원하고 1억9000여만 원을 들여 2007년 최고급 국새와 16종의 국새의장품을 만들었다. 행안부 ‘국새 백서’를 보면 전국 각지의 가장 좋은 진토(眞土)를 모아 거푸집을 만들고 철갑상어가죽 등 온갖 좋은 재료가 다 들어갔다. 재료마다 상서로운 뜻이 부여됐다.
그러나 ‘국가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남을 만한 예술성 있는 작품’이라던 국새가 요즘 체면이 말이 아니다. 600년의 국새 전통기술을 전수받았다는 민 씨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 800∼900g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고 이를 참여정부 장차관과 공무원, 정치인, 전직 대통령 등에게 선물로 썼다고 국새 제작에 함께 참여한 이창수 씨가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새도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식 가마에서 제작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두 사람은 ‘황금 퍼터’ 사업에 뛰어들어 서로 자신이 국새 제작자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국새 제작 이력을 내세워 금도장의 호가가 3000만∼2억 원이나 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장인(匠人)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행안부는 당초 “국새는 문제가 없고 만족스럽다”며 언론 탓을 하다가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재로선 두 사람의 주장과 해명을 가리기가 쉽지 않지만 국새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제작자들은 물론 담당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새를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의혹만으로도 국새의 의미는 이미 크게 퇴색했다. 구한말 나라를 빼앗겨 눈물을 흘렸을 국새가 이제는 온갖 추문에 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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