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최모 교사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강행해 해임됐다. 최 교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이 교문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이는 자리에 학생 8명이 ‘선생님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교장은 어린이들이 정치적 시위에 휘말리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판단해 피켓을 빼앗았다.
▷이를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 2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초등학생들로부터 피켓을 빼앗은 교장에게 “표현의 자유 침해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헌법과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국가안보나 공공안전 등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견해를 표시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어린 학생들이 어른의 사주를 받아 사회를 어지럽히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여도 ‘표현의 자유’이기에 막을 수 없다. 신체와 정신이 아직 미숙한 학생에게 어른과 똑같은 표현의 자유를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된 주장을 하면 혼낼 수도 있고 피켓을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 교육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초등학생의 판단력, 지적발달 수준 및 학교현실과 교육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학생들이 ‘외부’와 연계되는 경우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피켓을 들고 나왔더라도 교사라면 말려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같은 교육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는 어린 학생이 나설 일이 아니다. 자칫 학생들을 전교조 이념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인권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으로 논란을 빚은 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전임 위원장은 2008년 불법 쇠고기 시위 때는 침묵하다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무렵에 “시위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성명을 내 물의를 일으켰다. 1년 전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역시 왜곡보도로 쇠고기 시위를 촉발한 MBC의 ‘PD수첩’ 제작진 기소에 대해 “국내외에서 우려한다”며 불법 시위에 영합하는 자세를 보였다. 현 위원장과 이번 결정을 내린 위원들에게 자신의 초등학생 자녀나 조카가 불법 행위를 옹호하는 피켓 시위에 나서도 좋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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