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정모 씨(82)는 반세기가 넘도록 북한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다 지난해 8월 중국으로 탈출했다. 고령에 건강도 나빴지만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8일 뒤 은신처에 중국 공안이 들이닥쳐 정 씨의 짧은 자유는 산산조각 났다. 타국에서 억류자로 고초를 겪던 그가 끝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중국 정부의 비인도적 처사와 한국 정부의 외교적 무능이 한 많은 국군포로를 다시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국군포로를 포함해 송환된 탈북자가 북한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이달 16일 양강도 혜산비행장에서 송환 탈북자 3명을 공개 처형했다고 탈북자 학술단체 NK지식인연대가 어제 전했다. 2005년 천신만고 끝에 중국으로 탈출했던 국군포로 한만택 씨(당시 72세)는 같은 해 북송된 뒤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고혈압에 신체 왼쪽의 마비가 심한 정 씨에게 수용소행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정부는 정 씨 문제를 놓고 중국과 수차례 접촉을 했다지만 북송을 막지 못했고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중국의 선의(善意)를 기대하는 ‘조용한 외교’는 ‘무능한 외교’의 다른 이름이었다. 공개적으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국군포로 북송이 얼마나 비인도적 처사인지 국제적으로 알리는 적극적인 외교는 왜 못하는가. 국군포로의 북송은 유엔이 채택한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과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 위반이다. 중국은 유엔 회원국이자 제네바협약 가입국으로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청와대는 정 씨 송환을 중국에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그토록 두렵단 말인가. 정부의 침묵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도 않은 국군포로가 비겁한 대중(對中)외교의 희생자가 됐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외교 당국자에게는 국민의 안위보다 대외관계에서의 평안이 더 중요한 기준인가.
6·25전쟁 때 북한에 잡힌 국군포로는 정부가 반드시 귀환시켜야 할 사람들이다. 영국과 호주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유해까지 찾아내 유족의 품에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군포로 560여 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탈북자도 직접 데려오지 못한 정부가 무슨 글로벌 리더십을 운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