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김정일 정권을 침몰시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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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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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병 46명을 희생시킨 북한 정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존속하기 어렵다. 북한은 우리를 종이호랑이로 보고 또 다른 도발을 획책할 것이다. 북에 군사적 타격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속 시원한 응징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잠수정의 발진 기지나,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폭격하려고 했던 북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김정일을 직접 겨냥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의 도발 책임을 간혹 ‘강경파 군부’에 돌리는 분석도 있지만 북 잠수정이 김정일의 허가 없이 남쪽 군함을 향해 어뢰를 쏠 수는 없다는 것이 정확한 분석 같다.

리비아가 반미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훈련시켜 미군과 미국인들을 공격하자 미국이 카다피를 직접 겨냥한 사례도 있다. 미국은 1986년 4월 영국 기지에서 공군기를 출격시켜 카다피의 숙소와 테러리스트 캠프를 폭격했다. 카다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양녀가 죽고 두 아들이 부상을 당했다. 김정일은 카다피처럼 당할 것이 두려워 이 사건 후로 사무실과 숙소를 은폐하고 두더지처럼 땅속으로 숨어 다닌다.

그러나 군사적 응징은 북한과 일전을 각오해야만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김정일 정권의 종말이 오겠지만 우리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북의 방사포 5100여 문(2008 국방백서) 중 수백 문이 서울을 향하고 있다. 경제인 중에는 군사적 보복이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흉기를 들고 날뛰는 미치광이 집단을 다스리는 방법은 똑같이 칼 들고 설치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지략(智略)이라야 한다.

‘핵폭탄’보다 강력한 대북삐라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했던 장진성 씨(시집 ‘내 딸을 팝니다’의 저자)는 “북은 핵을 갖고 있지만 남에는 핵폭탄보다 위력이 강한 삐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세습 정권에 세뇌당한 주민의 의식상태는 백지에 가깝다. 세습독재 정권의 허위를 깨부수는 삐라의 내용은 백지에 얼룩을 묻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삐라가 한 사람 두 사람 백 사람을 거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종국에는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는 삐라를 통해 북한 정권의 허위를 깨달았고 KBS 사회방송과 극동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북한에서는 최근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삐라에 적힌 내용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현실의 삶이 갈수록 각박해지면서 삐라의 호소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노무현 정권 때는 삐라에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를 붙여 북에 풍선으로 날려 보내는 작업을 당국이 못하게 말렸다. 정부가 이것을 지원은 못할망정 말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삐라에 달아주는 1달러짜리 지폐나 북한 돈이야말로 진정한 북한 주민 지원이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돈은 김정일과 그 측근 그리고 군부의 주머니만 불려줄 뿐이다.

2004년 비무장지대에서 대북방송 확성기를 철거한 것도 큰 실책이었다. 대북방송은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북한군은 물론이고 북쪽 70km 지역에까지 들렸다. 북한 군인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일기예보를 청취하고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했다. 북한 병사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너무 컸던지 북은 통일부 채널을 통해 확성기와 전광판을 철거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했다.

당시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북의 요청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올렸고 이종석 사무처장이 뒷받침해 대북방송이 중단됐다. 북은 반대급부로 생색내듯 통일전선부가 운영하던 대남(對南)방송 ‘구국의 소리’를 중단했다. 북한의 병사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알려주던 방송을 효용성이 사라진 고철덩어리와 맞바꾼 셈이다.

北은 대북방송 철거 애걸했다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1995∼97년) 기간에 군량미를 풀었으면 대량 아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김정일이 못 풀게 했다는 증언도 있다. 백성은 옥수수죽도 제대로 못 먹는데 김정일의 와인창고에는 프랑스제 고급 코냑과 와인이 1만 병가량 쌓여 있다(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김정일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덕 군주다. “역사와 문명에서 하차(下車)한”(노벨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우리 세대에 부과된 시대적 소명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촉진해 주민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지금이 대북확성기 방송과 풍선 삐라의 살포를 재개할 완벽한 타이밍이다. 거짓과 날조의 신화에 기반을 둔 김정일 세습독재 정권은 진실의 어뢰라야 침몰시킬 수 있다.

황호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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