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區문화원은 되고 외솔문화원은 안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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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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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에는 문화원(文化院)이 5개 있다. 울산문화원 하나만 있다가 1997년 7월 광역시 승격 이후 5개 자치구별로 한 곳씩 세웠다. 지방문화원진흥법(제4조 6항)에 시군 또는 자치구별로 한 곳씩 문화원을 두도록 규정돼 있어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마다 문화원을 두고 있다.

문제는 획일적인 문화원 명칭. 도(道) 산하 시군은 자치단체 명칭을 붙여도 지역적인 특색이 나타나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특별시나 광역시 산하 구(區)의 문화원은 천편일률적으로 ‘○○중구문화원’, ‘○○남구문화원’, ‘○○북구문화원’ 등 삭막한 이름뿐이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지역 문화를 계승하고 창출하는 문화원에 굳이 자치단체 명칭과 같이 동서남북 방위를 붙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역 출신 훌륭한 역사인물이나 널리 알리고 싶은 문화행사, 문화재 등을 문화원 명칭으로 사용하면 ‘지역 문화를 균형 있게 진흥시키는 데에 이바지함이 목적’인 문화원 설립 취지에도 맞다”고 지적했다.

울산 중구는 중구 병영동 출신 한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의 호를 딴 ‘외솔문화원’으로 정하면 홍보 효과는 물론이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도 심어줄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또 울산 북구는 북구 송정동 출신으로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고헌 박상진 선생(1884∼1921)의 호를 딴 ‘고헌문화원’이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철광석 광산인 달천철장에서 유래된 쇠부리 놀이에서 이름을 따 ‘쇠부리문화원’으로 정하면 문화적인 냄새가 물씬 풍길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문화원 명칭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역시 지방문화원진흥법 때문이다. 이 법 제4조 5항에는 그 지방문화원의 사업구역인 특별자치도·시·군 또는 자치구의 명칭이나 다른 지방문화원과 구별할 수 있는 지명을 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역사 인물이나 전통 문화는 문화원 명칭으로 쓰지 못하게 막은 것. 일각에서는 “지방 문화원은 예산 대부분을 자치단체에서 지원받아 운영되는 만큼 자치단체와 명칭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론’도 나온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그 지역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한다면 자치단체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지역 문화를 알릴 아름답고 고상한 지방 문화원 명칭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법 규정 때문에 지방의 훌륭한 문화자산을 문화원 명칭에서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사장(死藏)시킨다면 엄청난 문화적 손실이 아닐까. 문화원 명칭은 문화 향기가 배어나야 제맛이다.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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