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지켜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상하이 정상회담에서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한중 정상회담이 4월 30일 열렸으니 후 주석은 불과 사흘 뒤의 김 위원장 방중(訪中)에 대해 모른 척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그런 줄도 모르고 후 주석에게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전에 알려 주겠다”며 관심과 협력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중국에 우롱당한 느낌이다.
후 주석은 2년 전인 2008년 5월 이 대통령과 함께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이에 따라 양국은 경제 문화뿐 아니라 정치 군사 부문에서도 긴밀한 협력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약속대로 한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생각했다면 이번과 같은 외교적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을 기만한 중국의 태도에 많은 국민이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은 그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정부의 견해를 밝히고 북-중 협의내용과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는 중국의 노동절 연휴에 중국대사를 불러 사실상 항의를 하면서도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도 중국의 김 위원장 방중 계획 통보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끝까지 “없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욕을 당하고도 중국의 처지만 배려하는 자세로는 중국에 항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천안함 사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방중을 결행한 정황이 역력하다. 김 위원장이 그렇게 나오더라도 중국은 천안함 조사 결과가 나온 뒤로 방문 일정을 조정했어야 옳다. 전후 맥락을 고려하면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더라도 중국이 방패막이로 나서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활용하기 위해 무턱대고 보호하는 것이 중국의 변함없는 대(對)한반도 전략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제라도 중국의 결례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걸맞은 자세를 요구해야 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어제 장 대사에게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고,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이번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천안함 사태의 가해자가 밝혀진 뒤 중국에 다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