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 政略으로 한명숙 수사 흔드는 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3일 03시 00분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어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9억 원 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별건(別件)수사를 하지 말라고 검찰에 지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 전날 별건수사를 자행한 검찰의 정치공작 뒤에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있다.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처음 수사할 때, 그리고 이번에 별건수사를 할 때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정 대표가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의 배후에 청와대와 여당이 있다고 말하려면 구체적 증거를 함께 제시해야 옳다. 공당(公黨) 대표가 뚜렷한 근거도 밝히지 못한 채 비리혐의 수사를 정치권력이 배후에 있는 ‘정치공작’으로 규정하고 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6·2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공세라는 인상을 준다. 더욱이 대통령에게 수사 중지를 지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해온 민주당의 종래 태도와도 이율배반이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인 남경필 의원은 “검찰이 한 전 총리의 별건수사를 부각시켜 오히려 부도덕한 그를 ‘잔다르크’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의원은 “증거가 있다면 지방선거가 끝난 뒤 당당히 수사해야 한다”고 역시 제동을 걸었다. 같은 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도 “공정한 선거가 진행될 수 있도록 검찰은 신중하고 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원희룡 의원)거나 “지방선거 전에 별건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나경원 의원)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9억 원 수수 의혹 수사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도 지방선거의 유불리만을 따진 정략(政略)의 소산이다. 법원이 신속 사법절차를 이용해 한 전 총리의 1심 판결을 일찍 끝낸 데는 지방선거에서 혼선을 막으려는 뜻이 담겨 있다.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수사를 않고 있으면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사건의 재판을 신속히 진행한 취지와는 배치된다.

여야는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검찰 수사를 흔드는 동상이몽(同床異夢) 행태를 그만 보이기 바란다. 검찰은 이러한 정치적 공방에 흔들리지 않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다만 이번에도 부실수사 논란을 부른다면 검찰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진다. 특히 ‘5만 달러 무죄’를 우회하려는 별건수사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9억 원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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