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을 접하면서 모윤숙의 시는 문득 국가와 군인은 무엇인가를 다시 되새겨 보게 한다. 천안함의 실종 승조원 46명 가운데 남기훈 상사에 이어 김태석 상사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남 상사는 결혼 기념으로 아내에게 십자수를 선물했던 자상한 남편이자 세 아들의 아버지였다. 두 형도 해군에서 장교와 일반병으로 복무한 해군 가족인 김 상사는 이번 작전을 마치고 오면 세 딸과 함께 맛있는 것 사먹자는 소박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실낱같은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시신이라도 온전히 찾았으면 하는 절박함으로 변하고 있다. 그나마 시신을 찾은 가족들을 부러워하는 슬픈 현실이다. 나머지 실종자 44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군인 경찰 소방관들에 대한 현실과 사회적 대우를 다룬 본보의 ‘MIU(Men In Uniform)-제복이 존경받는 사회’ 시리즈는 국격(國格)의 수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를 알아달라고 외국을 향해 외치는 국격 홍보도 필요하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제복의 사나이들’이 죽어서도 자긍심을 느끼고 국민이 존경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는 취지다.
군인 경찰 소방관에 대해 각별히 예우하고 대접하는 미국의 문화는 존경할 만하다.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담당 합동사령부(JPAC)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라는 모토부터 남다르다. 단 한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적진에 포로로 잡혔던 미군이 “언젠가는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으로 믿었다”는 신뢰는 이런 바탕에서 나온다. 미국은 핵문제를 놓고 북한과 대결하면서도 연간 200만 달러(약 20억 원)의 뒷돈을 주고 10년에 걸쳐 220여 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해 고국으로 데려왔다.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에서 군 당국의 잘못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지에서 돌아온 생존 군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깎아내리기에 혈안인 일부 정치인과 냉소하는 세태는 개탄스럽다. 제2차 연평해전 때 왼손 관통상을 입고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장롱에 처박아 뒀다는 권기형 씨가 “한주호 준위도 그렇게 잊혀질 것”이라고 걱정한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6·25전쟁 60주년인 올해 모윤숙의 국군은 오늘의 조국을 위해 장하게 싸우다 죽었노라고 우리에게 조용히 외친다. 바다 밑 천안함의 국군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할까. 어서 따뜻한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우리의 죽음도 명예롭게 기억되고 싶다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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