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새내기 철학입문서’ 20선]<18>한국철학사

한반도엔 어떤 ‘시대정신’이 있었나
◇한국철학사/최영진 외 지음·새문사

《“사상사는 비판·극복과 계승·발전이라는 이중주를 기본양식으로 하여 전개된다. 이 점은 주자가 전시대의 이데올로기인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구축하였지만 불교의 이론을 일정 부분 수용하여 유교적으로 변용시켰던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주자학이 불교라는 땅을 디디고 이루어진 것과 같은 논리로 다산과 혜강의 철학은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디딤돌로 삼아 외부로부터 서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형성되었던 것이다.”》이 책의 부제는 ‘16개의 주제로 읽는 한국철학’이다. 한국철학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나타난 두드러진 주제를 통해 한국철학의 흐름과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한민족의 사상적 바탕이 된 개념들을 알아보고, 외래사상이 유입되면서 그것이 어떤 형태로 변화 발전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최영진 성균관대 교수, 김방룡 충남대 교수, 박정심 부산대 교수, 안재순 강원대 교수 등 한국 철학자 11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저자들은 우선 시대를 구분한다. 고조선부터 통일신라까지를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 전기를 근세 전기, 조선 후기를 근세 후기,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전후의 시기까지를 근대 이행기로 설정했다.

1부는 한국의 원초적 사유와 고중세의 불교사상. 한민족의 원초적 사유의 토대가 된 것은 중국에서 발원한 유교와 도교, 인도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전래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교와 도교도 있었지만 본격적인 철학적 사유는 불교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불교가 외래사상이었지만 한국적으로 재구성되면서 한국적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한다.

2부는 근세 전기 조선 성리학의 성립 과정. 여기서 말하는 조선의 성리학은 중국의 주자학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당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주자학을 발전, 변용, 심화시키면서 조선의 학문과 사상으로 재구성하고 토착화한 것이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거쳐 정착된 조선 성리학은 이념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했다.

“조선조 유학성리학의 특징은 순정한 도덕성의 중시와 함께 이를 구현시킬 수 있는 현실적 제도와 권력의 추구라는 강한 실천성에 있다고 본다.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실천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주자학의 언어와 이론으로 해석하고 타개해 나가면서 이를 재구성함에 의하여 조선의 성리학이 성립된다.”

3, 4부는 근세 후기 조선 성리학이 발전하면서 양명학과 실학으로 다양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곡 정제두와 강화학파의 양명학’, ‘서학과 다산 정약용·혜강 최한기의 실학사상’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책에서 시종 강조하는 것은 주체성이다. 양명학에 대해선 “양명학자들은 자신의 내면에 진실하고 충만하여 모든 것의 주체로서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 했다”고 평했다. 다산과 혜강의 실학에 대해선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린 태도와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실학이라는 독창적인 철학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철학체계는 그 시대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창조적으로 구축된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사유부터 19세기 말 서구 제국주의 침입과 서구의 도전에 대한 사상적인 응전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엔 당대의 정신의 흔적이 담겨 있다. 따라서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은 지금 우리에게 그 시대를 보는 눈이 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