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배]야간집회 고삐 풀어주고 말텐가

  • 동아일보

2008년 여름 우리는 온 나라를 뒤흔든 엄청난 집회와 시위를 경험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무너졌고 여론은 분열되어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인적 물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이 온전히 효력을 갖고 있었는데도 상황을 좀처럼 통제하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 조항이 올해 6월 30일까지만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헌재 결정 자체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제는 헌재가 허용한 시한까지 집시법을 개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야간집회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무한정 허용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만약 집시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법규정의 공백이 발생하고 우리 사회는 2008년보다 더한 무질서와 혼란 상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올해는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추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어느 해보다 불법 집회와 시위가 발생할 수 있는 이슈가 많은 해이다. 2005년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는 물론이고 2009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열렸던 제2, 제3차 G20 정상회의 때도 매우 격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져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경찰은 집시법 제10조 중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부분이 집회에만 국한된다는 점에 착안해 법이 개정되지 않아 야간집회를 통제하지 못해도 군중이 이동하면 불법 야간시위로 간주하여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경찰로서는 야간집회를 단속하거나 통제할 근거가 없어지는 상황에 대비한 궁여지책이겠으나 미봉책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개정 시한까지 집시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야간 옥외집회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거나 야간을 오후 11시 이후로 보아야 한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집시법 개정에 반대한다. 헌재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은 금지 시간대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므로 구체적인 시간대를 분명히 하라는 취지일 뿐 야간 옥외집회를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두운 시간에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참가자나 경찰, 주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기업과 상인의 영업권이 침해될 수 있다. 현행법이 야간의 옥외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폭력 시위 중 약 40%가 해가 진 뒤에 발생했다고 한다. 따라서 야간에 발생하는 집회 또는 시위를 적절히 통제하는 일은 집회나 시위 참여자 외에 대다수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헌재의 결정도 이런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헌재 결정의 취지를 존중하되 집회나 시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야간의 기준을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과 같이 오후 10시로 하지 말고 오후 8시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은 단체가 집시법 위반 행위를 3회 이상 반복할 경우에는 집회 및 시위를 허용하지 않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여 법률을 경시하고 불법시위가 당연시되는 풍조를 차단해야 한다. 합리적인 집회 및 시위문화가 정착되고 집회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의 권리도 균형 있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주기를 당부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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