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범죄 대책, 또 요란한 빈 수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 사건으로 상습 성범죄자 관리를 강화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작년 발생한 강간범죄는 1만205건으로 이 중 1048건이 아직 미해결 상태이다. 김길태처럼 신원은 파악됐으나 검거되지 않은 강간 피의자만도 200여 명에 이른다. 성범죄의 야수(野獸)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호시탐탐 여성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김길태는 9세 여아 성폭행 미수와 30대 여성 감금 성폭행 죄로 모두 11년간이나 복역했는데도 출소 후 당국의 관리가 없었다. 그는 전자발찌 착용이나 성범죄자 신상공개 또는 경찰의 집중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교도소 내에서 성범죄 재범 방지를 위한 교정교육도 한번 받지 않았다. 법과 제도의 허점이 야수의 활보를 방치한 것이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과거 아동 성범죄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만 대응책 마련에 요란을 떨다가 다시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여야는 사건 발생 초기엔 당장이라도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국회 휴회 기간이지만 3월 말 본회의를 열어 아동성범죄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후속 활동이 속 터질 정도로 더디다. 국회에 계류 중인 아동성범죄 대책 법안만도 40건에 이르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여야 간에 단 한 번의 논의도 없었다. 주무 상임위인 법사위는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해외출장 중이어서 개회 자체가 불가능했다.

경찰 수사도 문제점이 숱하다. 김길태는 올 1월 20대 여성을 8시간 동안 감금한 채 성폭행했고, 피해 여성은 곧바로 신고했다. 경찰은 범인이 그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수배만 해놓고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이 범인의 상습성과 위험성을 파악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더라면 여중생에 대한 추가 범행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 수사에서 어떤 해이함이 있었는지를 집중 점검해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열람 절차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부 선진국은 성범죄자 집 앞에 표지판을 세우고 학교나 버스정류장 근처에 살지 못하도록 주거도 제한한다. 우리는 열람 자체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열람 후 신상정보 전파가 불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번만큼은 성범죄 대책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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