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견기업도 지원해야 일자리 더 생긴다

  • 동아일보

사무가구 전문업체인 퍼시스는 공공기관이 가구를 살 때 중소기업 제품만 이용하도록 한 지원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 회사를 쪼개 분사(分社)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한다. 덩치가 커질 만하면 일부를 떼어내 별도 회사를 만든다. 하지만 작년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이 바뀌어 2012년부터는 관계사의 매출을 합해 중소기업 여부를 판정받게 된다.

회사 규모가 중소기업보다 커지면 각종 규제가 기다리고 있고 중소기업청의 연구개발 지원도 끊긴다. 기업이 성장하면 부담과 족쇄가 커지니 스스로 성장판을 닫고 정부의 지원혜택을 누리겠다는 중소기업이 많다. 기업은행 IBK경제연구소가 중견기업 진입을 앞둔 250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55%가 ‘축소지향적 경영을 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런 인식은 실적에 그대로 나타난다.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제조업 기준)의 경우 지난해 설비투자가 5년 전에 비해 8.5% 증가했고 종업원 299명 이하의 중소기업도 같은 기간에 2.0% 늘어났다. 하지만 종업원 300∼999명의 중견기업의 설비투자는 14.6% 감소했다. 투자가 감소하는데 고용이 늘 리가 없다. 2000∼2007년에 연평균 고용 증가율은 중소기업이 1.0%, 대기업 ―1.1%, 중견기업 ―3.3%로 중견기업이 가장 나빴다.

유럽에는 세계 시장에서 보란 듯이 잘나가는 중견기업이 많다. 유럽 국가는 체계적인 중견기업 지원정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강소(强小)기업들을 육성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협력을 알선하고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독일은 1만2000개, 영국이 8000개의 중견기업을 보유해 허리층이 탄탄하다. 프랑스도 이에 자극받아 2008년 경제현대화법을 도입했다. 프랑스는 종업원 250∼4999명인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정하고 이들이 박사급 연구 인력을 채용하면 재정지원을 해준다. 중국도 중견기업에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들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기준을 새로 만들고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들이 성장을 자제할 정도로 남용된 중소기업 지원책도 정리돼야 한다. 정부가 중견기업이 당하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게 고용대책회의를 열 번 하는 것보다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