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덕환]과학정신, 지금 필요한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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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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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창의성과 함께 인성을 가르치는 시범과목으로 선택됐다. 과학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다. 과학이 인성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자연을 훼손하고 인간성을 망쳐버린 과학이 어떻게 인성교육의 수단이 될 수 있느냐는 더 거친 반응도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 현장에서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창의성이라는 단어처럼 인성도 과학교육에 붙이는 행정편의적 수식어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진정한 인성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물론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과 나누며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가 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화와 세계화로 상징되는 현대 과학기술 시대의 인성은 그런 원론적 교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어른 말을 잘 듣는 수동적인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 인성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양성과 개인의 권리가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통, 권위, 종교적 영성만을 앞세우는 구시대의 인성교육은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자연과 생명, 현대문명에 대한 융합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정신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성교육의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 인간은 자연과 함께 문명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우리에게 자연과 생명의 정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우리의 생존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으로 몸살을 앓게 된 것도 산업기술의 급속한 발달 과정에서 자연을 일방적 활용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탓이 컸다. 자연이 우리가 아껴서 관리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라는 오늘날의 인식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자연이 얼마나 광대하고 위험스러운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과학정신이다.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민주사회에서 단순히 이웃과 잘 지내자는 소박한 구호만으로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할 수가 없다. 모두의 이익을 동시에 극대화하겠다는 시도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지키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과학정신이 필요하다. 광우병 소동처럼 왜곡된 사실에 휩쓸려 혼란에 빠져버리는 사회에서 사람다운 삶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제 과학교육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창의성을 앞세워 과학자에게나 필요한 과학 개념 주입에 몰두하는 과학자 양성 교육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모든 학생을 위한 인성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과학적 창의력도 없고, 탐구와 실험에 매력을 느끼지도 못하는 절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도 현대 과학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도록 해줘야 한다. 과학이 쉽지 않고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은 학생들이 더 잘 안다. 국가 경제를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는 일방적인 주장도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이제 민주화, 세계화된 우리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과학을 배워야만 한다는 개인 수준에서의 강력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내년부터 새로 도입되는 융합형 과학이 대안이다. 개념 중심의 교육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우주와 지구, 생명에 대한 현대 과학적 해석의 틀을 이해시키고, 현대 문명에서 과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을 공허한 구호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당국과 교사, 과학계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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