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39세 판사가 아버지뻘 되는 69세 소송 당사자에게 “버릇없다”고 면박을 줬다.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그 당사자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동국대 법대 김도현 교수에 따르면 민사소송 당사자의 약 80%는 비싼 변호사비를 댈 수 없어 ‘나 홀로 소송’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법에 호소할 수 있어야 정의로운 사회다. 그러려면 가난한 서민도 변호사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 홀로 소송이 주를 이루는 우리의 현실은 정의로운 사회와는 아직 한참 거리가 멀다. ‘용산참사’가 그 단적인 예다.
작년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사업 농성 현장에서 6명이 화재로 숨진 용산참사의 근본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둘째, 억울한 일을 당한 세입자들이 국가기관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구할 수 없다 보니 과격단체인 ‘전국철거민연합’에 도움을 요청했다.
세입자들끼리 ‘자릿세’처럼 주고받는 권리금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엄연한 재산권이다. 법이 이런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니까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희생자에 대한 임시방편식 보상은 이뤄졌다지만 권리금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마련은 용산참사 1년이 지나도록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법보다는 집단 떼쓰기가 판을 치는 것이다. 변호사 비싸 80% ‘나 홀로 소송’
용산 세입자들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싶었어도 변호사 수임료가 턱없이 비싸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 수임료를 크게 낮춰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처럼 서민을 위한 ‘법률비용보험’을 널리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조계는 변호사 증원에 결사반대다. 국민을 위해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겠다는 이용훈 대법원장이나 소위 ‘진보’ 법조인을 대표한다는 박시환 대법관조차 이 문제에 관한 한 침묵하거나 반대한다.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소속 주성영 의원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과 박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 우리나라 법조계의 악습인 전관예우(前官禮遇) 덕분에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그들은 동업자 보호 의무감 때문인지 그 악습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변호사 증원에 대한 지지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변호사 증원과 같은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헌법기관은 국회와 법무부다. 국회에서 이런 개혁을 하려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법사위 구성원의 대부분이 율사 출신인지라 그들 역시 변호사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따라서 남은 개혁 추진 주체는 법무부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법무부의 사법개혁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가히 제왕적이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권리금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마련과 사법개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이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면서 서민을 위한 이런 중요한 개혁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 대통령은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무엇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서민이 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그 첫째는 제대로 된 일자리요, 그 둘째는 법 앞의 평등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필요조건은 기업의 설비투자다. 하지만 최근 2년간의 설비투자 증가는 ―10.9%로 노태우 정부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자유기업원이 최근 보고서에서 주장했듯이 친(親)기업 정책을 표방해온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노무현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약자의 눈물 닦아주는 사법 돼야
법 앞의 평등을 위해서는 변호사 수임료 인하와 더불어 법·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용산참사 농성 관련자들을 도시 게릴라로 묘사하며 엄정한 법집행만 촉구한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 시카고대 게리 베커 교수에 따르면 보통사람들도 위법(違法)의 이익이 비용보다 크면 법을 어긴다고 한다. 허술한 법으로 인해 더는 잃을 이익도 없는 서민에게 준법 강요가 먹히겠는가.
이 대통령이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면 일자리 창출과 사법개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국론분열을 가중시키는 세종시와 4대강의 블랙홀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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