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호]비상하는 60세 중국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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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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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1일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당정 고위 지도자가 모인 가운데 열병식을 포함한 대규모 기념행사가 거행되었다. 예년과 달리 양복이 아닌 중산복(中山服)을 입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무려 56종의 신무기를 사열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작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중국의 5000년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 프로그램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마치 60년 전 같은 곳에서 “중국 인민들이 마침내 일어섰다”라고 외친 마오쩌둥(毛澤東)의 메아리를 듣는 듯했다.

아편전쟁 이후 가졌던 ‘백년의 국치’를 뒤집었고 문화대혁명을 통해 극단적 이념이 주는 폐해를 학습했으며, 또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을 통해 불거진 ‘중국붕괴론’을 딛고 일어선 중국의 부상은 당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강대국화의 길을 걸어가는 중국의 비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지난 60년간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77배나 증가했으며 연평균 성장률도 8.1%에 달했다. 현재 중국의 1일 공업생산량은 1952년 1년 치에 상응하는 양이다. 1978년에는 1.8%에 불과했던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도 2008년에는 6.4%를 점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역총액이나 외환보유액에서도 중국은 이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中,일어섰다” 마오쩌둥의 메아리

지난 30년의 추이가 하나의 설득력 있는 지표가 된다면 중국의 부상은 당위의 명제일 수밖에 없다. 1994년에는 2050년 정도로 추정되던 중국과 미국의 국력 교차의 시점이 최근 2037년으로 앞당겨진 점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중세 이후 중국사에서 수성에 성공했던 왕조의 평균수명이 200년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올해로 60세(甲子)를 맞은 중국은 이제 막 힘이 솟구쳐 오르는 청년기에 진입하는 셈이다. 비상하는 중국의 꿈은 과연 무엇이고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수 년 전 미국의 한 중국전문가는 중국의 체제성격을 정의하는 학술적 용어의 수가 무려 20여 가지나 됨을 밝혔다. 한마디로 중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중국의 공식담론에서 주로 사용되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도 결국은 종착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완의 여정(旅程)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부유하며 또 외침의 위협이 적은 상태에서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개혁 개방 자체가 변화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배태했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 연해와 내륙지역 간, 계층간의 격차 문제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빈부 격차의 정도를 표시하는 지니계수가 1978년의 0.31에서 지금은 무려 0.5에 육박하고 있어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닮아가기(中國的拉美化)’에 대한 논쟁까지 일고 있다. 또 중국 전역에서 매년 10만 건 이상의 불법시위가 일어나 정부가 “안정유지가 관건(穩定壓倒一切)”임을 외쳐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작년에 발발한 티베트 사태와 금년 들어 불거진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인 독립시위는 중국이 앓는 ‘내과적 질환’의 증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발간된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백서에서 이 사건들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음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정부가 융화(融入)와 조화(和諧)를 강조하면 할수록 중국사회가 지닌 다원성과 분절성은 커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소득 3292달러를 기록한 중국에서 향후 생계유지를 넘어서는 ‘삶의 질’, 즉 정치참여 등에 대한 요구가 조직적으로 나타날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중화주의적 정서 주도권 쥔다면…

이러한 그림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부상은 속도의 문제일 뿐이며 여부(與否)의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부상하는 중국이 어떠한 성격과 모습을 가질 것인가이다. 중국의 외교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가 ‘도광양회(韜光養晦)’인데 이는 ‘몸을 낮추고 실력을 키워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계산된 겸허’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문제는 이러한 겸허가 끝나는 시점, 즉 미국과의 국력 교차가 일어난 이후 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可以說不)’로부터 최근의 ‘중국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中國不高興)’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에서 드러나는 민족·중화주의적 정서가 주도권을 쥔다면 이는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중국을 위해서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중국의 겸손한 성숙함이 지속되길 고대하기 때문이다.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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