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겉멋 같은 ‘벙커 상황실’ ‘위대한 국민을 위한 회의’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비상경제대책회의 직속 비상경제상황실이 청와대 본관 지하 벙커에 설치된다. 경제위기가 전시(戰時)에 준하는 긴급 상황이고 국정을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체제로 운영한다는 상징성도 있어 지하 벙커를 택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상황실에서 ‘비상경제전략지도’를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엄중한 현실인식을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워룸’ ‘지하 벙커 상황실’ ‘전략지도’ 같은 용어와 형식이 자칫하면 공허해지고 오히려 냉소의 대상이 될 우려가 없지 않다. 실제 상황 판단과 정책대응에서 헛방이 나오고 경제운용의 콘텐츠가 시원찮으면 ‘역시 말과 포장이 앞섰다’는 비판 여론이 증폭될 수 있다.

청와대는 그제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관해 자문을 구하는 원로회의를 운영하기 위해 60명 이내의 위원을 선정 중이라고 밝혔다. 명칭은 ‘위대한 국민을 위한 원로회의’라고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국민을 ‘위대한 국민’으로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이번에도 경제위기를 멋지게 극복하는 위대한 국민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원로회의란 것이 지난날 그랬듯이 정권에 의례적 상투적인 의견이나 전하고, 위원 자신들의 대(對)정부 민원창구로도 이용된다면 ‘위대한 국민’은 심한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자신은 일을 잘했는데 홍보가 시원찮아 국민이 몰라준다고 억울해 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국정의 실제 내용이 홍보나 구호에 못 미쳤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747(매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실현)’ 공약도 냉소의 대상이 돼 버렸다.

청와대가 ‘워룸’이란 말을 자주 하고 비상경제상황실을 지하 벙커에 설치한다고 해서 특별히 기대를 거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을 그런 포장에 감동할 정도로 본다면 오산이다. 기교는 절망을 낳고 허풍은 불신을 낳는다. 실제로 경제를 살려내야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자꾸 겉멋을 부리면 국민은 ‘아, 실속은 없겠구나’ 하고 뒤집어 생각하기 쉽다. 특히 이 정부는 실용과 실질로 승부하겠다고 한 정부다.

정부가 몇몇 새로운 위원회 만들기에 나서는 모습도 그리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위원회라도 다소간 필요성이야 있겠지만, 기존의 조직 가지고 못하는 일이 새 위원회 만들었다고 잘되지는 않는다. 지난 정부의 ‘위원회병(病)’이 그 증거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