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스타 농민’들은 FTA가 안 무섭다

  • 입력 2007년 4월 4일 19시 41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만큼 확실한 농업 대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이 주장은 잘못됐다. 한미 FTA가 아니고도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 등의 개방은 세계 대세다. 전농은 빨리 개방을 받아들이고 FTA가 떼로 몰려와도 한국 농산물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작업에 나서는 게 정답이다. 큰 조직과 회원들 간의 굳은 연대 정신까지 있지 않은가.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한미 FTA 원천 무효! 이제 국민이 나섭니다”라고 외치지만 국민도 알 건 다 안다. ‘FTA가 되면 사랑니 뽑는 데 100만 원 든다’는 궤변은 이제 안 통한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FTA 타결이 ‘잘된 일’이란 응답이 ‘잘못된 일’이란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농 경남지부가 “승리는 결국 투쟁하는 농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FTA 비준 거부 시위를 준비하는 시간에 ‘진짜 농민’들은 세계 최고 농민들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스타 농민’ 이영춘(50) ㈜장생도라지 대표는 5월부터 진주 도라지 재배 현장을 찾을 일본 바이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한 번에 100명씩, 이틀을 자고 가면서 이들이 쓰는 돈은 2억 원가량. 올해 20팀이 총 40억 원을 쓰고 간다고 보고 있다. 농업이 주변 관광산업까지 키우는 셈이다. 이 대표는 이들에게 점심 한 끼만 낸다.

21년근 도라지로 건강식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정규 직원만 40명이다. 이 대표는 “237곳의 도라지 재배 농가와 판매 대리점을 합해 총 300가구를 먹여살린다”고 했다. 바이오 기술로 개발한 상품을 들고 7년간 20여 개국을 돌아다닌 끝에 일본 바이어를 확보했고 요즘은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다.

사실 이 대표나 지리 교과서에 실린 도라지 재배법 개량 성공 사례의 주인공인 그의 부친 이성호(76) 씨는 FTA의 타격을 우려하는 보통 농민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럼 대학 졸업 후 광주에서 빌린 땅 20평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강용(40) 학사농장 대표는 어떤가. 전남 장성 농장에서 이른 새벽 채소를 거둬 도시에 내다팔던 그는 유기농법을 채택한 뒤 백화점 납품은 물론이고 직판점까지 확대 중이다. 회원만 1만 명이다. 강 대표는 “상추나 치커리 등 평범한 품목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줘 더 많은 젊은이가 농업에 뛰어들게 하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시골 정미소집 아들인 나준순(52) PN라이스 대표는 선박 엔지니어로 일하다 1988년 정미소를 떠맡았다. 쌀가게 납품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맛과 안전을 담보하는 쌀을 개발하는 데 사재를 털었다. 쌀을 이온수로 세척해 코팅하는 기술과 저온저장시스템을 고안해 낸 그는 요즘 연간 23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아내한테서 “당신이 쌀 전도사라도 되느냐”는 핀잔도 듣지만 4일에도 경남도청에서 농업인 등 280명 앞에서 ‘FTA 시대와 브랜드 쌀’에 관한 강연을 했다.

벤처 농업인 시대다. 농민이 생산만 하는 시대는 갔다. 소비자가 무얼 바라는지 열심히 듣고 정보를 챙기며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명함과 e메일 주소가 없는 농민은 못 들어가는 충남 금산의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만든 농업의 희망 선언 두 번째 항은 ‘정부 의존적 타성에서 탈피하여’로 시작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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