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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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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 의료기관 이용 편리하게 개선하자는 취지
지금은 중단된 방송이지만 ‘러브하우스’라는 국내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을 전문가들이 모여서 뚝딱뚝딱 작업하면 시청자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집으로 개조되고, 거주자가 감동하는 모습에 시청자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의료법 전면 개정 작업은 러브하우스를 만드는 일과 비슷했다. 현행 의료법은 34년 전인 1973년에 전면 개정된 뒤 부분적으로 25차례나 개정된 것이어서 ‘누더기법’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전면 개정이 필요한 데는 의료법이 ‘누더기법’이라는 이유 말고도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하나는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며, 다른 하나는 의료산업을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이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인이 환자에게 질병과 진료 방법을 설명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용을 환자에게 알려 주도록 개선하며,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자와 장애인의 경우 필요한 때엔 보호자가 처방전을 대리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과제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서비스 관계 장관 회의 등 각종 협의기구를 통해서 의료계가 합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법인의 합병 절차를 인정해 경영 합리화를 유도하고, 의료법인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양방과 한방이 한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의료기관 명칭도 국제화시대에 부응할 수 있게 ‘클리닉(clinic)’, ‘호스피털(hospital)’, ‘메디컬 센터(medical center)’ 등의 명칭을 허용했다.
의료법 개정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6개 보건의료단체, 2개 시민단체, 변호사와 의대 교수가 참여해 5개월간 토론과 토의를 거쳐 마련했다. 모든 단체와 참여자가 100% 만족하는 개정안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하는 시안을 마련했다.
정부도 입법 추진 과정에서 모든 국민과 이해 당사자인 의료인의 의견을 기탄없이 수렴하고, 논리적 근거를 가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전면적인 의약분업 실시 이후 의사에게 피해의식과 불신이 쌓인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모두는 아닐지라도 의료계의 요청을 반영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쟁점 사항이 그렇게 전면 반대를 주장할 정도로 의사를 억압하는 내용인지를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법 전면개정 실무팀 위원
■반 - 의료 자율성 침해하는 사회주의적 발상
의료법 개정안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의지로 말미암아 강제 의약분업으로 발생했던 의료대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된다.
의료법 1조는 의료법에 대한 정의(定義)인데 현행 법안은 ‘국민의료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적정성을 기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한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의료인, 의료기관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현행 법안은 의료 수요자와 의료 공급자 사이의 균형과 상생을 의미하지만, 개정안은 국가가 국민 건강증진이라는 명분만 있다면 의료 공급자의 방침과 관계없이 필요와 목적에 따라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수단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국가와 의료 공급자가 동일하다면 가능한 사회주의적 논리일 따름이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법안이라고 스스로 공표하는 셈이다.
의료 공급자가 국가인 북한의 의료법 1조는 ‘인민들의 건강증진과 의료사업의 발전을 위해 의료 활동의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우기’위해서라고 의료법을 정의했는데 대한민국의 개정의료법 시안 1조와 논조가 비슷하다.
다른 내용도 의료 전문인을 국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한 탈전문화를 시도해 의료인의 자율적 발전을 말살할 뿐이다. 예를 들어 의료 행위, 표준의료지침, 신의료 기술평가, 의료심사 조정위원회 설치와 간호진단에 관한 내용은 의학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므로 대한의사협회와 관련 학회가 자율적 지침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정안은 이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하는 법적 규정으로 만들어서 의료를 규격화하고 수동화한다. 의학적 현실성, 융통성과 발전적 진화의 가능성을 의료인과 의대로부터 박탈하고 정부가 의료인을 국가적 목적에 따라 수단화하는 관료 편의주의적 시도이다.
설명의 의무 법제화(제3조 2항)는 언뜻 보기에 국민(의료 수요자)을 위한 내용인 것 같으나, 의사(의료 공급자)가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고 치료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데도 설명했다는 점을 어떻게 근거로 남겨야 하는지, 또 국가가 강제로 시행하는 건강보험 체제 내에서 이를 시행하는 데 드는 시간적 재정적 부담의 책임을 의료기관에만 지우는 방안이 타당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의료법은 최소 10년에서 30년을 바라보고 개정해야 하고 이를 근거로 의료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인데 미래 산업화를 대비한다는 개정안 1조부터 좌파적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용식 자유주의연대 전북포럼 대표·전주삼성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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