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깨진 유리창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9분


도시 변두리에 유리창이 몇 장 깨진 채 방치된 빈집이 있다.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깨지는 유리창이 늘어나 결국 온전한 유리창이 하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불량 청소년과 노숙인들이 몰려들어 빈집은 부랑자 숙소로 변한다. 이사 가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동네는 슬럼화하고 우범지대가 된다. 반대로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워 놓으면 더는 깨지는 유리창이 없고 범죄도 발생하지 않는다.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캐서린 콜스의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뉴욕 경찰은 범죄의 천국으로 불리던 뉴욕의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에 이 이론을 행동으로 옮겼다. 건물 낙서나 지하철 무임승차, 구걸 같은 질서문란 행위를 단속하면 범죄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실제로 뉴욕의 범죄는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줄었다. 폭력 사건은 지난 12년 동안 75% 감소했다. 1990년 30.72건이던 인구 10만 명당 살인은 2005년 6.57건으로 1963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지금 뉴욕은 미국 10대 도시 가운데 가장 안전한 도시로 꼽힌다.

▷뉴욕의 범죄가 줄어든 것은 ‘깨진 유리창 이론’ 때문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경제성장으로 50만 명이 일자리를 갖게 됐고, 인종갈등이 줄어들고,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낙태의 합법화로 범죄 가능성이 큰 사생아가 줄어든 것이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깨진 유리창 이론’의 적용으로 뉴욕시민의 질서의식과 준법정신이 크게 향상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서울 강남구와 경기 파주시가 뉴욕의 선례를 따라가고 있다. 강남구는 작년 10월부터 불법 주정차, 담배꽁초 마구 버리기, 불법 광고물 부착 등 ‘작지만 나쁜’ 법규 위반을 집중 단속해 질서 있고 매력적인 도시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기야 ‘사소한 위반을 바로잡아야 큰 질서가 잡힌다’는 이론을 실천해야 할 곳은 중앙 정부다. 과격 노동단체와 좌파세력의 도심 불법시위 같은 것에 엄정 대처하기는커녕 정치권력부터 법을 우습게 아는 행태를 심심찮게 보이니 말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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