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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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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옹에 이어 자랑스러운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국마라톤의 영웅’ 남승룡옹이 20일 오전 10시25분 서울 문정동 경찰병원 중환자실에서 운명했다. 향년 89세.
▼60년대말부터 칩거생활▼
“슬프죠.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 세상에서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빌고 또 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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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지킨 부인 소갑순씨(79)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흐르는 눈물을 거두질 못했다.
아무리 ‘1등만 기억되는 세상’이지만 그동안 ‘3등’인 남편이 걸어온 삶은 영광보다는 좌절이 컸기에….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코치, 전남대 교수, 대한체육회 임원으로 나름대로 ‘체육인의 삶’을 살던 60년대말. 느닷없이 “젊은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야 육상이 발전한다”고 말하며 체육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한 지 30여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옹과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서윤복옹 등이 만나자고 해도 나서질 않는 등 사람 만나기를 극도로 꺼렸던 남옹은 생계마저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그동안 궁핍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역주하는 남승룡 옹
남옹은 일제강점기 ‘금메달에 버금가는 값진 동메달’을 따내 민족의 억눌린 한을 풀어낸 영웅. 하지만 금메달을 획득한 후배이자 친구인 손기정옹에 밀려 ‘양지’보다는 ‘그늘’에서 한평생을 보낸 ‘비운의 마라토너’였다.
남옹은 96년 9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60주년 기념행사 이후 공식석상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지난해말부터 곡기를 끊더니 올 1월12일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 사인은 폐부종과 상부위장관출혈, 심부전, 신부전 등 노환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손상.
고인의 유족으론 부인과 2남4녀. 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지방공사 강남병원 영안실. 02―3430―0456
▼투병중 손기정옹엔 안알려▼
한편 남옹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양정고 1년 후배인 손기정옹은 전날 경기 용인시 수지읍 딸집에서 남옹의 타계를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였다. 손옹의 가족들은 노환으로 투병 중인 손옹의 기분이 좀 나아지면 친구의 운명 소식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