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 컴퓨터 자판치는 중증장애인 민경식씨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35분


1급 뇌성마비, 그것도 중복 중증장애인인 민경식씨(32·사회복지법인 대전 ‘평강의 집’ 거주)는 자신의 시(詩)에서 표현한 대로 ‘날지 못하는 새’다.

그러나 요즘 컴퓨터를 배우며 그는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날아다닌다. 박물관에도 가보고 미국 백악관에도 가 보았다. 얼마 전에는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도 다녀왔다.

다만 손가락을 전혀 사용할 수 없어 부러진 라디오 안테나와 나무토막 고무줄을 이용해 만든 기구를 코에 낀 채 키보드를 두드리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게 아쉽다. 키보드를 치기 위해선 코로 숨쉬는 것을 중단한 채 입으로만 쉬어야 한다. 이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를 칠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나온다.

의자에도 앉을 수 없어 키보드를 바짝 배에 닿게 하고 두드린다. 그래도 하루 2∼3시간은 꼬박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가 대전 대덕구 대화동 ‘평강의 집’에 온 것은 11세 때인 1980년. 골목길에서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입을 삐죽대며 고통의 표정을 짓는 그를 이곳 직원이 발견한 것. 재활과 특수교육을 20년째 받았으나 워낙 증세가 심해 차도는 없다.

욕심은 많아 이것저것 안해 본 게 없다. 대입 공부를 시작해 99년 5월 검정고시 중등과정 4과목을 합격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개 과목을 추가 합격했다. 그런 틈틈이 자원봉사차 찾아오는 대학생과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에게 졸라 컴퓨터를 배웠다.

그의 낡은 컴퓨터에는 ‘민경식 시집’ ‘사연 보내기’ ‘자서전’ ‘동생 건강상태’ 등 다양한 폴더가 만들어져 있다. 지난해에는 93년부터 지어온 시를 모아 시집 ‘날지 못하는 새’도 펴냈다. 요즘은 홈페이지 제작에 열중이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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