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아]'대도' 조세형 일본현지 최초 단독인터뷰

  • 입력 2001년 1월 29일 15시 55분


《지난해 11월24일, 노숙자 선교활동을 위해 일본으로 갔던 조세형씨가 한 주택가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다 현지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세인을 놀라게 했다. 사건 이후 조씨는 국내외 기자들은 물론 아내 이은경씨의 면회마저 거부한 채 입을 다물고 있어 도대체 그가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여성동아>는 우여곡절 끝에 1월15~17일 사흘동안, 유치장에 수감된 이후 최초로 조세형씨를

만났다. 그는 내내 “부끄럽다”는 말과 함께 아내와 아들 등 가족들의 이야기를 할 때 애써 참았던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잡히고 난 후 부끄러워 차마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해 가명을 썼다는 그가 처음으로 <여성동아>에 사건의 경위와 현재의 심경을 낱낱히 털어놓았다.》

그를 만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일본 경찰도 그 자신도 면회 자체를 거부했다. 그는 A4 용지에 면회거부에 대한 내용을 적어 일본경찰에게 주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누구도 만날 의사가 없음을 확실하게 했다. 그만큼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의 아내나 변호사가 온다 할지라도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결심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 유명한 ‘대도’ 조세형(63). 시부야 경찰서의 경찰이 필자에게 보여준 조세형의 메모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것이 꼭 초등학생의 글씨 같았다. 그가 쓴 글씨 아래에는 조그맣게 일본어로 토를 달아 놓고 있었다. 한글을 모르는 일본경찰이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맨 처음 조씨가 갇혀 있다는 시부야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면회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전화를 받은 경찰은 이렇게 말했었다.

“조상(씨)과 어떤 관계요? 와도 소용없어요. 그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대요.”

그렇게 실랑이하기를 며칠, 직접 시부야 경찰서로 찾아가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조씨가 쓴 면회거부 종이를 보여주며 넌지시 필자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면서 그는 조씨에 대한 안부를 묻자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시부야 경찰서에서는 이미 한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대도’ 라는 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경찰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우연히 조씨가 이날 병원에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1월15일,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후 3시30분에 히로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택시를 타고 즉시 병원으로 달렸다. 그리고 도쿄도립히로병원 정형외과 진찰실 앞에서 무작정 그를 기다렸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였다.

파리한 얼굴, 희끗희끗한 흰머리, 오렌지색 트레이닝복

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는 두 발의 총알을 맞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역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칼을 휘둘러 오른쪽 턱에 한발, 오른쪽 어깨에 한발을 맞고 체포되었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가 일본의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 쇼토에서 빈집을 털다 붙잡힌 것은 지난해 11월24일, 그때 체포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런데 1월15일까지 병원에 다니는 것으로 봐서 상처가 깊은 모양이었다.

오후 4시 5분쯤 조씨가 히로병원에 나타났다. 오렌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조씨의 양 옆에 형사가 두 명, 책임자인 듯한 사람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이 조씨를 에워싼 채 빠른 걸음으로 진찰실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방향은 필자가 기다리고 있는 정형외과 쪽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들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조씨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 조씨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0여분이 지난 뒤 얼굴이 익은 시부야 경찰서 형사가 수납창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계산을 마치고 미처 말을 걸어보기도 전에 재빨리 정면 현관이 아닌 구급차들만 드나들 수 있는 비상문을 통해 빠져 나갔다. 급히 따라가보니 조씨는 이미 비상문을 통해 8인용 미니버스 경찰차에 타고 있었다. 또다시 택시를 타고 조씨가 탄 경찰차를 뒤쫓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특수유리로 코팅 처리된 경찰차 안에 있는 조씨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결국 이튿날 또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담당자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면회에 대한 가능성 여부도 전날과는 달리 일일이 경찰간부에게 보고하고 결과를 통보 받았다. 필자는 면회신청서에 필자의 생년월일과 주소, 전화번호를 쓰고 직업을 유학생이라고 간단히 적었다. 그러나 신분증 대조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서 대여섯 차례를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경찰간부와 조씨로부터 면회 허락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건강은 어떠세요?”

시부야 경찰서의 면회실은 한국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구멍이 뻥뻥 뚫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하며 옆에 경찰이 입회해 있는 것 등 한국과 똑같았다.

조씨의 얼굴은 파리해 보였고,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많이 나 있었다. 옷은 전날 입었던 오렌지색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턱의 상처는 말끔하게 나아 있었지만 오른쪽 어깨는 소매를 끼지 못한 채 옷으로 덮고 있었다.

조씨는 낯선 여자와의 면회가 생소한 듯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가족의 안부와 주변 친지들의 인사말을 전하자 이내 긴장감을 풀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우선 필자는 전날 히로병원에 간 결과부터 물었다.

“상처는 어떻습니까?”

“글쎄, 어제도 그동안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않아 내가 조르고 졸라서 병원에 간 겁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이제 이 팔을 제대로 못 쓴대요. 어깨 아래쪽으로 다 나갔대요. 나도 이들과 같이 분명히 X선 촬영 사진을 봤어요. 여기 이 부분(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사이를 손으로 가리키며)의 3분의 2가 다 나갔어요.”

하지만 전날, 경찰은 조씨가 매우 건강하며 식욕도 왕성하여 식사도 잘 한다고 말했었다. 또한 병원에 가는 것도 어깨의 다친 부분을 치료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혹시 뱃속의 내장에 이상이 없나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 경찰은 덧붙여 자신들은 6개월에 한 번 검사를 받을까 말까한데, 조씨는 수시로 체크를 한다며 조씨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었다.

“총을 맞을 만큼 칼을 휘두르진 않았어요”

그러나 조씨의 말은 달랐다. 그 동안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고 그날도 그 자신이 자꾸 요청해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상처 부위를 가리키며 말할 때의 조씨는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어쩌면 오른팔이 영원히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날의 결과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필자가 다시 물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경찰에게 칼을 휘둘러서 총을 쐈다는데요.”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총을 쏠 만큼 칼을 휘두른 적이 없어요. 이들은(옆의 경찰을 가리키며)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 있지도 않은 다른 죄까지 뒤집어 씌우려고 해요.”

조씨가 뒤집어 씌우려 한다는 것은 공범들을 일컫는 것.

“사실 맨 처음 붙잡힐 때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제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보안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그래서 숨겼던 거예요.”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그가 밝힌 그의 신분은 후배인 고양빈씨의 이름. 바로 이 후배가 함께 빈집을 턴 일본인을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고씨는 일본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십장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조씨에게 빈집 전문털이범인 아키라라는 일본인을 소개해 주었다는 것. 이같은 사실을 조씨는 경찰의 심문에서 모두 진술했다고 한다. 이 일본인은 달아났다.

“하지만 일본 경찰이 내 말을 믿지 않아요.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해요.”

조씨는 평소 신세를 졌던 아키라라는 이 일본인의 부탁을 받고 도와주다가 이렇게 됐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자신이 지은 죄는 결코 총을 맞을 정도의 큰 죄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바이벌 칼도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자신이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가지고 다니던 도구 세트중의 하나였다는 것. 그렇지만 어쨌든 자신이 행한 죄는 매우 부끄럽다고 말했다. 자신을 많이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게도 면목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씨가 일본경찰의 과잉방어였다고 주장하는 권총발사에는 조씨의 말처럼 다분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일본경찰은 여간해서는 총기사용을 하지 않기 때문. 그래서 필자는 그동안 일본에서 일어났던 대형사건들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시모노세키역에서 칼을 들고 지나는 행인을 마구 찔러 살상한 사건, 도쿄 이케부쿠로 ‘도큐핸즈’에서 역시 양손에 칼을 들고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찔러 죽인 사건 등 최근 2~3년 사이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5~6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범인을 체포할 때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씨가 칼을 휘둘렀기 때문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쏘았다’는 시부야 경찰의 입장을 놓고 조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체포될 때 일본경찰이 한국인인 줄 알았었나요?”

이에 대해 조씨는 확실하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옆에 입회해 있던 시부야 경찰관도 체포될 당시 조씨가 한국인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씨는 한 사람이었고 경찰은 세 사람이나 있었다. 따라서 조씨가 아무리 등산용 칼을 휘둘렀다고 해도 수적으로 우세한 경찰이 총을 쏜다? 조씨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건 분명 일본경찰의 과잉방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고 일본경찰의 과잉방어 때문에 조씨의 죄가 희석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면회 도중 조씨는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 남편을 99.9% 믿는다는 그의 아내 이은경씨의 말을 전하자 조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제 아내에게는 많이 다쳤다는 말, 절대로 하지 마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아내하고 아이만 생각하면….”

조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면, 특히 아내와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얼굴이 욱신거릴 정도로 울음을 참느라 애를 쓰다가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흐느꼈다. 조씨는 “어쩌다 이렇게…” 라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조씨는 아내와 자신이 친형제처럼 지내는 두 명의 후배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일본경찰의 발표대로라면 그가 훔친 것은 손목시계 4개와 휴대용 라디오, 의류 몇 가지 등 총 13만엔어치(130만원 상당)에 해당하는 물품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본경찰의 일방적인 발표일 뿐이다. 실제로 그가 이같은 물건을 훔쳤는지, 아니면 공범이 훔쳤는지 그 진위는 일본법정에서 가려지게 된다. 조씨는 적어도 일본내에서는 초범인데다 훔친 장물이 적어 웬만하면 ‘강제출국’을 당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사안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선교에 관한 책 좀 넣어주세요”

하지만 국내에서 워낙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일본경찰도 새삼스레 조씨를 주목하게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시부야 경찰서 관계자들은 조씨가 그토록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만큼 경찰측도 그냥 좀도둑이려니 생각하고 조씨의 부상만 나으면 얼른 마무리지어 끝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매스컴에서 ‘대도’니 어쩌니 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시부야 경찰도 ‘아차, 뭔가 큰 사건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 것. 혹시라도 그의 뒤에 거대한 조직이 있지 않을까, 야쿠자나 혹은 한국의 조직폭력배가 배후에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덕분에 조씨를 심문하는 강도가 강해졌다는 것.

바로 이 점을 조씨 가족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인 이은경씨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은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당연히 죄값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벌어진 사건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떠벌여지는 사태만큼은 결코 조씨에게 이롭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조씨는 현재 시부야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 조씨는 일본은 한국처럼 춥지는 않지만 갈아 입을 옷이 없어 불편하다고 했다. 붙잡힐 때 입고 있던 옷은 총을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는 것. 게다가 그 동안 계속 면회거부를 해 왔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넣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또한 노안으로 눈이 잘 안 보여 글자를 전혀 읽을 수가 없다는 말도 했다. 운동은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유치장 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뭐냐”고 물으니 서울의 선교원 사무실에 있는 선교에 대한 책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식사는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타국 땅에 홀로 갇혀있다보면 ‘비상금’이 필요할 것 같아 필자는 유치장을 나서면서 적으나마 1만엔을 영치금으로 넣어주었다.

1월17일 세번째로 시부야경찰서를 찾았다. 전날 조세형씨가 부탁했던 옷가지와 돋보기안경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경찰서를 나온 필자는 사건현장인 쇼토지역을 가보았다. 거기서 이번 사건과 관련 주변취재를 해본 결과 사건 당시 조씨는 총상을 입고 “이타이, 이타이(아프다, 아프다)”하며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피를 많이 흘려 ‘범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심경은 몹시 복잡한듯 했다. 졸지에 ‘대도’에서 ‘좀도둑’으로 전락한, 그것도 나라망신을 시키며 외국인 집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금기를 스스로 깨고 일본 유치장에 영어의 몸으로 갇혀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운 듯했다. 면회 도중 그는 부끄럽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자신의 그같은 모습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보이기 싫었던 듯, “아내에게 절대로 일본에 오지 말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의 부인 이은경씨는 조씨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자 이렇게 말했다.

“가야지요. 일본에 갈 거예요. 전 그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전 99.9% 그이를 믿어요.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그 죄값은 당연히 받아야지요. 전 아이하고 기다릴 겁니다. 지금까지 그이가 어떻게 살아왔게요. 그 많은 수입을 모두 없는 사람들 위해서 아낌없이 썼는데, 그런 사람이 한 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제가 그를 버릴 것도 아니고… 전 그를 믿어요. 제게는 정말이지 부족함이 없는 남편이었어요. 며칠 후 제가 일본으로 가겠습니다. 면회거부를 해도 꼭 찾아가겠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같은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조씨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조씨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글·유재순<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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