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민1세대로 구성 '에버그린 합창단' 고국서 첫 공연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9시 16분


고운 옥색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선 할머니들은 오랜만에 친정집을 찾은 새색시처럼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비록 모국을 떠날 때의 검은머리가 이제는 은빛으로 변해버렸지만.

초창기 미국 이민자들로 구성된 ‘에버그린합창단’이 설레는 마음으로 첫 고국무대에 섰다. 고은빛여성합창단(단장 정진원)의 초청으로 19일 나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온 에버그린합창단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단장인 김춘훈 할머니(86)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거주하는 할머니 6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단원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는 고령. 하지만 13년째 빠지지 않고 해마다 정기공연을 가질 뿐만 아니라 광복절과 3·1절 등 한인행사 때마다 참가해 축가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역만리 타향에 살면서 노래로 향수를 달래는 교포들이 어디 우리들뿐이겠어요.”

김춘훈 단장은 “향수가 깊어지니 고국의 노래가 절로 나오더라”고 말한다.

87년 초로의 할머니들을 합창단으로 모이게 한 힘은 바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대부분 60년대 이민 1세대인 이들은 세탁소와 식료품점 등을 하면서 어렵게 이민생활에 적응해 온 세대. 교민노인학교를 다니던 중 쉬는 시간마다 ‘가고파’나 ‘선구자’같은 가곡을 즐겨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목사님의 권유로 합창단을 결성하게 됐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에서 한복을 입고 초청공연을 가졌을 때는 시의원과 청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고국에 오는 게 고맙고 설레어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잤다”는 할머니들은 이날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가 준비한 성가곡들을 열창했다. 이들은 20일 CBS에서, 21일은 군부대 위문공연을 갖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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