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EM정상회의/인터뷰]EU 집행위원장 프로디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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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외교무대 복귀를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여 의사를 밝힌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다만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시간은 걸릴 것으로 본다.”

유럽의회와 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유럽동맹(WEU) 본부가 있어 통합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 본부가 있는 오데르겜가 브레이델 빌딩에서 12일 낮 로마노 프로디 집행위원장(60)을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이탈리아 총리 재임시 청렴함으로 존경을 받았던 그의 명성처럼 검소하고 소박했다. 집무실에 있는 귀해 보이는 가구와 르네상스풍의 그림은 지난해 3월 부패스캔들로 사임한 자크 상테르 집행위원장의 후임으로 그가 중책을 맡자 축하 방문한 이탈리아 문화부장관이 빌려준 것이라고 했다.

짙은 회색 양복 차림의 프로디위원장은 15개국, 3억5000만 유럽 시민들의 구심이자 2만5000명의 공무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 EU를 이끄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이웃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소탈해 보였다. 그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20,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ASEM의 의의는 무엇인가.

"아시아와 유럽의 외교 무역관계가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아시아 각국, 특히 개최국인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하는 시점에 열리기 때문에 서울 ASEM의 의미는 어느 때보다도 크다. ASEM 출범 5년째를 맞아 이번 회의에서는 아시아와 유럽간 협력의 방향과 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게 될 것이다. 경제분야의 공동협력과 국경을 넘는 범죄와 마약퇴치를 위한 공동대응 등 중점 협력분야를 규정한 기본 문서가 채택될 것으로 본다.”

―ASEM이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친목 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다수 국??모이다 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EU의 역사만 보아도 초기에는 그 같은 비판이 많았다.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서는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직 출범 초기라 실망스러운 측면도 있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협력을 모색해 나가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공동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왔던 북한이 국제 외교무대 복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북한과 EU와의 수교 전망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일부 회원국들이 이미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결정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관심있게 북한과 회원국의 관계 개선을 주시해 왔다. 아직 EU 집행위 차원에서 북한과의 수교에 관해 구체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없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회원국들의 수교 추진 상황을 지켜보며 방향을 정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은 짧은 기간에 경이적인 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가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개혁을 통해 경제구조를 강화하는 제3의 국면에 있다. 경제전문가로서 나는 한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본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신경제 발전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경제구조도 첨단 과학과 신기술을 신속하게 도입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로화의 장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유로의 가치는 달러 대비 80% 수준으로 출범 이후 계속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미국 경제가 10년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다. 나는 유로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중앙은행과 하나의 통화정책을 갖고 있으며 유로의 채권시장 규모는 달러보다 크다. 유로의 기반이 되는 유럽 각국 경제가 상승국면에 있고 건실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아직 유럽시민이 유로에 익숙하지 않지만 내년부터는 실물 화폐 도입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유로는 장차 동유럽 발칸반도 우크라이나 모로코 등 지중해 지역까지 아우르는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본다.”

―최근 공동외교안보 대표 임명, 유럽 신속대응군 창설 등 EU가 정치 군사적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단일 국가 형태의 유럽공화국으로 갈 것인지, 유럽연방으로 갈 것인지 등 장래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장차 EU의 정치적 형태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EU가 얼마나 빠르게 통합을 이룩해 나갈지는 나 자신도 짐작하기 어렵다. 다수 국가들이 주권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가는 실험은 국제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EU는 지난해 단일통화를 채택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정치적 통합은 불가피하지만 EU의 미래상이 단일 국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회원국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세계화 추세에서 필요한 분야에는 한 목소리를 내는 평등한 국가들의 연합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15개 회원국들이 11개 공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중시한다. EU출범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군사적 충돌이 모두 EU권 밖에서 일어난 사실이 말해주듯 EU가 유럽 전체로 확대된다면 분쟁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프로디 위원장은 최근 실시된 덴마크의 국민투표 결과를 예로 들면서 "회원국들이 주권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브뤼셀〓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로마노 프로디 약력
39년이탈리아 스칸디아노 출생
71∼99년볼로냐대 경제학과 교수
74년하버드대 객원 교수
78∼79년산업부 장관
82∼89, 93∼94년이탈리아 산업부흥공사(IRI) 총재
96∼98년이탈리아 총리
96∼99년국회의원
99년9월이후유럽연합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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