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군장성 구속 부른 정유업 비리

  • 입력 2000년 7월 27일 18시 41분


군이 정유사들의 담합으로 기름을 못 구해 전시용 비축유를 축냈는가 하면 뇌물을 받고 비싼 값에 항공유를 구입한 끝에 장성까지 구속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기업의 부도덕성도 문제지만 그런 환경에서라도 국민 혈세인 국방 예산을 엄정하게 집행하지 못한 국방 당국의 자세도 비판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98년과 99년 국방부의 군 항공유 구매 실태를 보면 담당자들이 과연 시장경제 아래서 군수 조달 업무를 처리할 능력을 가졌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조달본부는 정유사들로부터 항공유의 원가 산정 자료를 입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유사들이 제시하는 값대로 유가를 지불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는 정유사들의 담합과 군수 조달 책임자의 수뢰범죄가 개재돼 있었음이 밝혀졌다.

군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군 정유 비리에서 300여억원의 국방 예산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방부가 국방 예산을 확보하는데 쏟는 것보다 더 큰 노력을 국방 예산의 손실 방지에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이번 비리 사건은 지난 한달동안 본보가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한 정유업계 문제점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유사들은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담합과 과당 경쟁을 번갈아 벌이며 잇속을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공급 차원에서 생산자인 정유업체와 소비자인 국민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데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고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피해는 상대편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산업 활동에 있어서 유류제품의 가격은 기업체의 국제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가격 책정 시스템은 재검토되어야 할 대상이다.

정유업이 대규모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금융비용 등의 지출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고 또 방대한 소매 조직의 관리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어려움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리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제에 정유5사는 그동안 언론에서 지적된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바로잡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정부 당국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정유업계와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제거하고 객관적 자세로 정유제품 공급시스템의 개선에 서둘러 나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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