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旅程 마친「회상의 열차」

  • 입력 1997년 9월 20일 21시 22분


지난 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을 떠난 「회상의 열차」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장장 8천㎞의 대장정 끝에 19일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켄트 북역에 도착했다. 60년 전인 1937년9월 연해주지역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오늘 다시 체험하는 뜻깊은 여정(旅程)이었다. 러시아 고려인협회와 국내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최하고 동아일보사 등이 후원한 이 행사는 한마디로 그늘에 묻혔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현장체험으로 되살려낸 역사참여였다. 60년 전 그날 연해주지역 18만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다. 소련정권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일본인 간첩활동 방지」였지만 사실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말살정책에 따른 강제추방이었다. 이 수난의 진상은 구소련시대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가 90년대 들어서서야 피해 동포들의 노력으로 역사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강제이주 당시 희생당한 동포들이나 죽음의 땅에 버려졌던 동포들의 명예회복과 재산상의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논의조차 없다. 그 한을 가슴에 묻고 60년을 살아온 50만 중앙아시아지역 한인들은 이제는 또다른 민족문제로 삶을 위협받는 얄궂은 처지에 놓여 있다. 「회상의 열차」는 척박한 남의 땅에서 일군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백성의 눈물의 유형(流刑)을 고난 당사자와 후예들이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으로 멈춰 서서는 안된다. 직접적으로는 그들의 고난에 대한 조국과 러시아당국의 속죄를, 더 크게는 다시는 그같은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민족적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그때에야 「회상의 열차」는 비로소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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